▲ 김 명 환 목사

20년 전만 해도 한국교회의 주류들이 주체가 된 대규모 집회들이 곳곳에서 많이 열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매머드집회의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대규모 운동경기나, 인위적인 축제의 의미 이외는 두지를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매머드 집회를 주관하는 몇사람의 축제이상의 의미가 없다. 우리민족의 현실과 별 상관이 없는 집회라는 것이다. 이 메머드 집회가 민족의 현실에 대한 어떤 의지를 표명하고, 역사에 기록할 만한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면, 기독교인들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다.

이 집회의 주체자들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러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당시 모두가 모인 숫자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이를 곱지 않게 바라본 사람들은 민족정력의 소모행사로밖에 보지 않았다. 이 땅의 교회들이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이탈했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한국교회가 민족의 문화와 역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니 이 땅의 천박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다면, 정부나, 국가권력이 긴장하고, 오늘과 같이 교회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먼저 자기혁명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130년동안 쌓아 온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지난 130년의 짧은 역사에도 한국개신교가 1000만영의 신자를 얻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교회를 중심해서 일어난 3.1만세운동 당시 일본 식민지세력은, 한국교회의 조직에 놀랐고, 만세운동에 동원된 교인들의 수에 놀랐다. 그리고 개신교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탄압했다. 그것은 한국개신교회가 역사와 함께 한민족의 고난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개신교가 역사와 단절하고,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이탈했다는 사실 앞에 무엇이라고 변명할까. 그것은 우리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과 뗼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류라고 자처하는 대다수의 교회들은 정권과 타협하며 성장했다. 근대화의 바람에 휘말려 급변하는 사회과정에서 본향을 잃은 피난민, 인구이동 등 수많은 실향민들이 선택한 길이 교회로 가게 했다. 그래서 도시교회는 농촌교회에 빚진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모인 교인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그런데 저들에게서 걷은 헌금으로 호화로운 교회당을 짓고, 자동차를 사들여 교인 모셔오기 경쟁을 벌인다. 이것이 권리인가. 이러한 잘못에 대해서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급급한 것은, 교회가 가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닌가. 다시말해서 기득권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기득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아니 한국교회는 간난하고 소외된 농촌교회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백낙준 교수는 “이 땅에서의 참 교회는 농촌교회이며, 이 교회를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목회자가 참 목자이고, 이 교회를 섬기는 교인이 참 교인이다”고 했다. 그렇다 교회는 낮은 가운데서도 큰 힘을 발휘한 예수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피압박 민족으로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외쳤던 3.1운동의 그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뿌리인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이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을 갈망했던 이스라엘 야훼신앙으로 돌아가자.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교리화, 제도화시켜 버렸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너와 내가 따로 움직인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교회의 중심을 나에게서 너에게로 옮겨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나눔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항상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나누며,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나눔과 사랑, 그리고 섬김은 구원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주류라고 말하는 목회자들은 교회성장의 싸움에서 얻은 권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주류라는 힘 밑에서 참 진리는 침묵당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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