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성 목사
교회의 맘몬주의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새로운 교인을 전도해서 교회를 성장시킨다는 것에 대해 기대할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아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현실에 부딪친 것만은 사실이다.

교회마다 성장이 침체되면서, 전도프로그램이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교회들이 전도학습을 위한 학원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전도프로그램은 한국교회의 성장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교회를 개척해서 한국교회가 ‘성장의 해’를 맞을 수 있다는 말은, 70-80년대의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한국교회는 사회적, 국가적,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울 때 경쟁력을 가졌다. 때문에 일본제국주의 36년과 6.25한국전쟁, 전쟁이후 초근모피는,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한국교회는, 피압박민족에게 해방이라는 희망을 주었고, 무지한 백성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로인해 한국교회는 국가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할 많은 지도자를 길러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와 우리사회를 이끌 인적자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철저하게 기독교의 중심사상인 나눔과 섬김, 그리고 긍휼의 사랑실천으로 선교의 경쟁력을 높였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으며, 각종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의료혜택을 주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이같은 한국교회의 사랑실천은 모두가 전도자원이 되어 한국교회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70-80년대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중 하나가 세상을 향해 교회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권력의 주변을 맴돌고,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한국교회는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기 시작했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또한 교회들이 세속주의와 맘몬주의에 길들여지면서, 교회의 전도자원은 고갈되기 시작했다. 또 바벨탑을 쌓기 위해 ‘축복’이란 이름을 빌어 헌금 강요 등 사이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맘몬교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은 교회의 교인들을 빼앗아야 하는 형국에 놓였다. 자연스럽게 교인쟁탈전이 이루지고 있다. 이로 인해 작은 교회는 설자리를 잃어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문을 닫는 교회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문을 닫는 교회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의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뜻있는 일부목회자들이, ‘작은교회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다시 성장의 해를 맞이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교회가 살아야 한국교회가 다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은근히 어느 사이에 없어졌다. 오늘 작은 교회 목회자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교회의 사이즈로 목회자를 평가한다는데 있다. 때문에 이들도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아 교회를 성장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야만 목회자와 사회, 그리고 교인들로부터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하늘 높이 치솟는 십자가탑은, 세상사람들로부터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맘몬교회를 건축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늘 가깝게 바벨탑을 쌓는다고, 교인들이 드린 하나님의 거룩한 헌금을 초호화판 교회당을 건축한다고,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을 좋은 환경으로 모신다고,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좋은 교회당에서 드린다고,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급을 받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생각해 보자.

예장 정통보수 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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