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오늘 세계는 생태학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인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세계가 무기경쟁을 벌이면, 얼마안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생태학적 위기가 찾아온다고 예언자적 절규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온다. 개신교 목사인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무기경쟁의 길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기술문명을 독점하는 자들이 이런 예언을 귀담아 듣지 않고, 기술문명을 내세워 바다 또는 지구 밖에서 자원을 발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오늘 세계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농업과 공업 분야에서만, 8만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독이다. 땅에 뿌리면 그 땅은 못쓰게 된다. 더 독한 것을 써야 한다. 또 이 물질은 대기를 오염시킨다. 이럼에도 이 땅에는 매년 1천여종의 새 화학물질이 개발되고 뿌려지고 있다. 공해로 매년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면적의 산림이 파괴되고 있다. 이러다가는 얼마 안가서 지구의 3/1이 불모지로 변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요즘 지구는 온난화로 인해 이상기온이 발행하고 있다. 올 한반도는 110년만에 처음으로 살인더위가 찾아 왔다고 말한다. 밤에도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은 에어컨이라도 틀어놓고, 더위를 식히지만, 그렇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좁은 방에서 부채에 의지한 채 밤을 지세우고 있다. 이 살인 더위는 분명,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한 결과가 아닌가(?) 우리 모두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그럼에도 세계는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탄산가스량은 늘어나 지구의 온도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다고 아우성친다. 동식물에게 치명타를 안겨줘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신에 대한 도전은 지구를 죽음의 길로 내몰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균열을 일으킨다. 기계는 멈추지 않는다. 과잉생산을 해, 이를 판매하기 위해 미디어를 동원한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환경오염을 유발시킨다. 사람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죽음에로 향하는 이 인류의 행진을 누가, 어떻게 막을 것인가. 국가이기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세계정치구조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 이 국가이기주의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 세계 식량생산의 50%는 세계인구의 20%도 안 되는 선진국에서 소비한다. 이른바 선진국이 사용하는 에너지 사용이 저소득 국민의 40배가 된다. 한마디로 미국 국민 1인이 아프리카 40인이 쓰는 자원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은 1년 동안 5천만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지는 줄어들고, 가난한 자들은 공해로 농지가 줄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것은 문명의 이기가 불러온 재앙이다. 한마디로 문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사람과 함께 사는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하며, 함께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기계와 다르다. 사람은 이웃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사람이다. 고락을 함께 나누는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새로운 나라를 창출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도도, 윤리도, 도덕도, 애원도 있다.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와 능률을 가져다가 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로 인해 인간사회는 비정해 지고 있다. 서구는 벌써 그 비극으로 인해 울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기계화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아이들과 부모간의 인정이 고갈되었다. 그것은 너를 위해 주고받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이 고갈되어 몰인정한 사회로 변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을 테크놀로지에 내 맡긴 결과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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