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탁 기 목사
1917년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해 였다. 지난 1년 동안 한국교회는 중세교회보다도 타락한 우리의 변화와 개혁을 외쳤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성서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성서로 복귀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거부하던 맘몬과 바벨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미켈>은 콜럼버스 미 대륙 발견 500주년 특집에서 기독교 선교를 뛰어넘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승리의 결과를 짧은 글로 평가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등장했다. 이 신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이고, 그의 성체는 미국의 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나라는 지금 크램린의 지도자들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다”

<슈미켈>의 지적처럼 유럽의 자본주의 문명은 기독교의 선교 희망과 더불어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보편적인 문명이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으로 출발하면서, 5세기의 대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은 승리하실 것이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민족의 우상을 비로 쓸어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다”란 기도문을 되뇌기며, 항해 길에 몰랐다.

이 기도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정신인 ‘평화’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낀다. 기독교선교의 세계화는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계화는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을 시작으로 출발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들어섰다.

<기독교한국신문>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1년 동안 오늘의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향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 설(회개)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개혁과 변화의 바람소리를 들을 맑은 귀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교회를 악의 소굴로 몰아넣은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최악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자기 게토화에 빠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벌인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지 못했다. 10월은 종교개혁의 달이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은 2017년을 개혁과 갱신의 원년으로 삼았다. 그러나 교회의 분열과 갈등은 여전히 진행되었고, 개별교회주의와 교파주의에 빠져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과 찬송을 성직자들이 가로챘다.

이제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야 하는 세태가 되었다. 하비콕스는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고 경고 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자기 게토화에 빠져 하나님과 교회를 동일시 하며, 교회를 완결적인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중세교회는 예수님을 제도화시키면서, 성직자들은 타락하기 시작했고, 교인들은 혼돈에 빠졌다. 이 때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그렇다. 한국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종교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1년 동안 종교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는 없었다. 한마디로 게토화된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벌인 하나님나라운동과 유리되어 있었다.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는 없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교회는 행동하지 않았다.
신자유주 경제질서에 편승된 한국교회는 신의 자리를 돈으로 빼앗아 버렸다. 그의 나라는 크렘린도 좋아하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 되었다. 그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성체는 달러가 되었다.

그리스도교회협 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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