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4~25)

4월은 부활의 계절인 동시에 생명의 계절이다. 그래서 소망의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마다 희망이 넘친다. 또한 4월은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교회는 4월달을 고난당하는 이웃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부활주일도 있다. 모든 교인들은 부활절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린다.

성경대로 그리스도는 살아 나셨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존속해 왔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사신 분이고, 그리스도로 죽임을 당하셨다. 죽임을 당하셨지만 다시 사셨다. 고린도전서 15장 1-11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부활하셨다는 증언과 그리스도인의 ‘부활의 삶’을 말하고 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활의 삶’만이,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한마디로 죽는 삶이 부활이다. 그런데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처럼 살 수 없고, 죽을 수 없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삶을 받아드리지 못는다. 때문에 유대의 권력은 로마의 팍스와 결탁해 예수 그리스도를 극악 무도하게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돌로 무덤의 문을 막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열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증언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도 부활의 삶을 살며, 증인이 되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여기에는 예루살렘의 본질을 드러내고, 죽은 자를 기념하는 교회가 아니라, 산사람을 위한 교회를 만들겠다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한마디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불구자, 떠돌이 등 보잘 것 없는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가져다가 주었다.

그렇다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우리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인간이기를 포기한 정치인들의 입에서는 슬픔에 잠긴 이웃을 향해 막말을 솥아 낸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슬픔과 아픔에 잠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인간의 아픔과 슬픔에 반응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성서의 인정공동체를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당하는 이웃의 슬픔과 고통을 애처롭게 생각하고, 이들과 함께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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