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하나님•예수님•성령을 고백하자

오늘날 교회의 예배의식은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그것은 한분 하나님, 한분 예수그리스도, 한분의 성령을 분파의 교회들이 서로 끌어당겨, 그 한분은 한국교회 그 어디에도 임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고난당하는 민족과 상처투성이인 사회 그리고 전쟁을 부추기며, 국가 간에 일어나는 전쟁과 불의를 보고서도, 모른 채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이기 때문에 공허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예배의식은 공허한 흥분상태로 채워지고, 이를 한국교회는 성령의 역사하심의 표징으로 착각한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을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 말한다. 성령은 복음과 구원의 영이다. 한분의 하나님과 한분의 예수그리스도를 민족과 사회, 그리고 세계에 증언하는 능력이다. 즉 민족과 세계, 그리고 사회의 불의를 근원적으로 꿰뚫어 보게 하는 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령은 역사의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 통일된 대한민국을 창출하게 된다고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 <민족통일과 기독교>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 민족과 사회, 세계의 불의한 질서를 보지 못하고 드리는 예배와 기도, 대형집회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갈라진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기쁜소식(복음)도 마찬가지이다. 분단된 조국을 끌어안고, 미 민족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교회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있어 최고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교회는 분파주의와 교파주의를 극복하고, 한분을 고백하는 하나의 교회로서, 민족의 요구(평화적인 민족통일)에 응답해야 한다. 갈라진 교파와 기구들이 있는 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그리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노래하기는 쉽지 않다. 기구적으로 교회들이 개체화되어 있어도,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행동하면, 예배와 신앙의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박순경 박사의 주장이다.

한국교회는 복음에 반대되는 어둠의 과거와 현재의 기독교 선교와 기독교의 과오와 잘못을 복음의 빛 아래서 다시 밝혀져야 한다. 기독교는 선교 초기부터 영미의 교파주의자들에 의해서 분열의 씨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분의 하나님, 한분의 예수 그리스도, 한분의 성령을 고백하면서, 무익한 싸움과 분열을 거듭해 왔다는 증거다. 따라서 교회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밀려나, ‘예수 천당’, ‘불신지옥’ 등 싸구려 복음을 외치는데 급급해 왔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반민족적인 요인들을 몰각하고, 민족분단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굳혀 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하나님나라만을 외치며, 공허한 예배만 드려 왔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지를 않고서는 새 시대, 새로운 세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한국기독교와 한민족은 계속해서 어둠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자
허공을 치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와 대형집회 멈추자

▲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이웃나라 누구도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는 남북한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 화해에 봉사

“과거에도 이 민족을 일본의 억압에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다시금 이 민족을 강대국들의 억압에서 구원 하소서/민족분단의 비극과 불의에서부터 구원 하소서/민족의 불의와 우매함에서부터 이 민족을 구원 하소서/이 땅의 교회들이 이 민족의 구원을 증언하도록 하소서/이 땅의 불의와 거짓을 증언하게 하소서”(한국선교 100주년 한국기독여성 기도문 중)

이 기도문은 한민족사 전체의 문제들을 말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가 역사의 한복판에서 민족구원에 대해 봉사하지 못한 잘못을 회개하는 기도문이다. 특히 일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 앞으로 민족통일을 위해서 역사하실 하나님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 기도문은 일본 식민지세력 아래서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항일무장투쟁과 일본군과 정신대에 강제로 끌려가며,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남편과 아들, 그리고 딸들을 바라보며, 기도했던 이 땅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들의 기도라는데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이 기도문은 민족의 우매함에도 항일민족운동의 구원의 의미를 고백하고 있다. 또 열강들의 억압에서부터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또한 민족분단을 넘어서는 미래의 절규도 담겨 있다. 한국기독여성들은 한국선교 100년을 맞아 민족의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않고서는 기념사업이나, 대형집회를 갖는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개신교는 한국선교 130년을 넘겼다. 130년동안 한국교회는 분단을 넘어서는 길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분단의 중심에서 대결구도를 만들어가는 데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허공을 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와 집회를 갖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오라고 했다. 한민족을 향해 분단극복을 위해 말하라고 했다.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남과 북의 갈등의 요인들을 넘어서는 제 3의 길이 정치, 경제, 사회, 사상의 상호 접근의 길이 열리지 않고서는, 교회와 민족의 새로운 미래, 구원의 미래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면서, “종말적인 하나님나라의 복음과 의는 체제들을, 주어진 어느 체제들도 이것들을 넘어서는 초월성을 지시하므로, 극복하고 넘어서게 하는 역사의 동력이다. 특히 한국기독교는 복음의 그러한 자유를 상실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요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반도의 평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평화가 그리 반갑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일본식민지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러시아에 의해서 자행되어 왔다. 전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는 “남한의 방위는 일본 방위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현 국무장관도 “일본은 동맹관계이고, 대한민국은 파트너 관계”라고 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한반도를 일본과 미국의 방어를 위해 한반도를 철저하게 이용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는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 넣어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챙기겠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2차 대전으로 망가 질대로 망가진 일본은 6.25 한국전쟁을 통하여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얻고, 부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이런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원 할 리가 없다. 남북 간에 적대적인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되도록 부채질 하는 것이 일본 아베정부의 속셈이다.

평화는 하나님이 준 위대한 선물

그러면서 일본 아베정부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나라이기 때문에 우방이 될 수 없다. 분명 미국은 대한민국과 혈맹이다. 이런 일본을 두둔하고 나서는 인사들이 있다는데 안타깝다. 평화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성서의 예언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증언했다. 참된 평화는 무기에 의해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은 평화를 해치는 무기와 이념을 파괴해 버린다는 것을 한국교회가 노래하고 선포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가 그렇지를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한분 하나님•예수님•성령은 이 땅에 평화를 주고, 하늘에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오셨다. 그런데 평화를 노래해야 할 교회가 분열과 갈등을 노래하며, 평화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분파와 분열에 익숙한 한국교회는 국론분열과 이념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의 중심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민족분단과 군사적 대립관계를 방관하면서, 행동 없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노래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왔다. 이러한 기도는 헛소리이며, 거짓말이다. 이것은 분명 비성경적이며, 반민족적이다. 기도하고 노래해야 할 복음의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즉 세계 상황과 권력에 휘말려든 교회는 평화를 기도하고, 노래할 자유, 하나님의 평화와 자유를 상실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대한에수교장로회 열린총회 초대총회장인 유순임 목사는 “한민족끼리 총칼을 겨누었던 시리고 아픈 역사의 흔적이 여전히 가슴을 후빈다. 시대는 2000년대를 훌쩍 넘어 2019년인데, 1950년에서 시계가 멈춰버린 우리 민족의 상처가 덧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한국교회 여성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분단의 현장에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 화해의 노랫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전력을 쏟아야 한다. 두 번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 땅 위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라가 산다면, 이슬같이 죽겠노라”고 <기독교한국신문> 논단에서 밝혔다.

성서에서 말하는 ‘샬롬’은 평화의 원초적인 의미인 자연과 화합하는 삶, 사회에서의 번영을 향유하는 삶을 의미한다고 신학자들은 말한다. 오늘 세계의 패권주의들과 기술과학의 결탁, 행무기 생산과 핵원자력의 위협은 바로 창조자 하나님의 축복을, 특히 세계의 약자층으로부터 박탈하는 일을 자행하면서, 평화를 운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예언자들이 증언한 평화, 하나님의 창조의미인 평화, 즉 ‘샬롬’과 대치된다.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은 힘에 의한 로마평화(팍스)를 노래한다. 북한의 핵으로 100만명이 죽어도 괜찮다고 한다. 또힌 미국의 사드만 있으면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래서 뜻있는 국민과 목회자,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민족의 죄악과 세계의 죄악을 은폐하지 말고,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노래하라고 한다. 여기에는 일인을 위해 인민전체가 희생을 당하는 북한정권을 향해서도 핵무기 포기를 규탄하고, 포기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세계 죄악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과 창조세계를 보존 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응답해야 한다. 그것은 한민족공동체의 평화와 자유, 정의를 위해 절대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평화와 예언자들이 말한 평화가 합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주체로서의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호화로운 교회당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고, 온 인류의 하나님, 한민족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한민족의 통일이라는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교회는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그리고 평화통일에 봉사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봉사하자

안병무 박사도 자신의 저서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한길사)에서 독일의 통일에 있어서 독일교회가 중심에 있었던 만큼, 한국교회도 한민족통일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민족통일의 문제를 지적했다. △민족분단이 집권계층에 의해 초래 △통일이 군사력과 통치제제 강화로 믿었다는 점 △민족통일은 중앙집권적 강권발동으로 이룰 수 없다는 점 △무력에 의해 통일을 믿었다는 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해야 한다 점 등을 성서에 근거해서 제시하고 있다.

성서적 근거는 분명하다. 분열과 다툼이 아닌 평화이며, 화해이다. 통일을 군사력과 통치체제, 중앙집권적인 강권발동에 의한 민족통일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갈망했던 하나님에 의한 통치가, 이 땅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갈망해야 한다. 그것은 평화적인 통일이며, 남북한 민족의 화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은 무신론, 남한은 물신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한민족의 화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박순경 교수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민족통일을 향한 하나님나라 선교의 주체가 바로 남북한 동포, 아니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남북한 선교를 넘어 세계선교를 향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기위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분단 74년, 광복 74년, 한국선교 130년을 맞아 상실한 복음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범교회적, 범교단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침묵을 깨고, 평화와 화해, 통일을 노래 할 때 비로써 가능하다.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먼저 한국교회는 민족분단과 국가적 대립관계를 방관하면서, 평화와 화해를 말 할 수 없다. 다음은 민족과 민족들 사이에서 지배와 피지배자 관계,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한 관계가 존속하는 한 평화와 화해는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가 분파와 분열된 상황서 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말 할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전히 교회 안에서 남여의 차별, 분열과 갈등이 존속하고 있으며, 기득권을 가진 교회와 교인들은 자신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거짓 안정이며, 거짓 평화이다. 그리고 거짓 화해이다. 여전히 교회 안에서는 보수와 진보, 교인간의 분쟁, 교단간의 갈등, 이웃교회와의 교인쟁탈전, 목회자와 교인간의 분쟁 등등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말할 수 없다. 분단 74년, 광복 74년을 6.25 한국전쟁 69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분단으로 상처를 입은 이웃을 위해 일하는 교회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물신주의에 빠져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온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남북한 동포가 요구하는 하나님나라 선교에 정진해야 한다.

통일, 교회와 상관없는 정치적인 것(?)

이것이 바로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여는 새로운 선교, 한민족에 의한 남북한 선교, 세계선교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남한의 하나님이며, 북한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한국교회의 일부 목사들은 전라남도의 하나님, 전라북도의 하나님, 경상도의 하나님, 충청도의 하나님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라도 도민과 여기에서 태어난 민족을 ‘빨갱이’, ‘전라민국’이라고 설교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지역감정의 본산이 되었다.

이런 말을 하는 목회자가 담임하는 교회 안에 전라도 출신의 교인, 충청도 출신의 교인, 경상도 출신의 교인이 엄연히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남북한 민족, 아니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한국교회는 예수님께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벌이신 하나님나라운동을, 오늘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새롭게 벌여야 한다.

그곳은 8천만 남북한민족의 소원이며, 아픔인 분단의 현장이다. 한국교회는 이 곳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그것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반기독교적이라는 관념이 머릿속에 꽉 차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평화적인 민족통일은 교회와 상관없는 정치적인 일이라고 생각해 왔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는 각종 행사와 공 예배에서 북한동포와 민족통일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북한교회 재건 및 북한동포 지원을 위한 헌금도 드린다. 그만큼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남북한 민족의 화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실천은 없고, 허공을 치는 기도이며, 의미 없는 헌금이다. 이렇게 드린 헌금은 어디에 쌓아 놓았는가. 북한선교를 위한 헌금은 분명 목적헌금이다.

그런데 이 헌금이 누가 어떻게 지출했는지에 대해서 누구도 아는 바가 없다. 알면서도 침묵한다. 오히려 남북한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행동하는 교회와 사회단체를 향해 비판을 쏟아낸다. 무조건 북한이 싫은 것이다. 내 형제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의 북한 민족의 인도적인 지원에 반대하며, ‘퍼준다’고 말한다. 외교부 강경화 장관은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라며, 도와주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그리스도인들만,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를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것을 북한 김정은에게 무조건 퍼 주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남한이 도와준 달러는 핵개발과 일용할 양식을 북한군의 군량을 위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와 달리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대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러나 그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이제 한국교회는 통일이후 북한선교를 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주체자로서 나서야 한다.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한다. 독일의 통일을 위해서 독일교회가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알아야 한다. 독일교회는 동서독으로 분단된 상황에서도, 서로 교류하며, 독일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 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그리고 동독교회를 적극 지원하며, 정치적으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후원했다. 한국교회도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벌여야 할 운동이 바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운동이다. 올해는 분단 74주년, 6.25 한국전쟁 69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관념 때문에 남북대화와 북한지원,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에 대해서 매우 인색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이나, 민족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등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이면도,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민족화해에 대해서만큼은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보이고 있다. 민족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뜻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신학자들은 민족분단의 한복판에 있었던 기독교가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극복과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세계분단의 중심에 세계교회가 있었다. 세계교회는 세계분단 극복을 위해서 말하고, 행동했다”면서, “한국교회도 민족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이제는 교회가 한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에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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