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근 열 목사

새벽부터 밤중까지 열심히 일해도 집한채 마련하지 못하고 가난한 직장인들이 우리주변에는 많이 있다. 보도에 의하면 국회의원들은 일하지 않아도 세비를 꼬박꼬박 받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빈부의 차이가 극에 달하고 있다. 과연 누가 부자일까?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아야 되겠는가?

사람은 외적으로 부족함 없이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갖고 거기에 부와 권력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자가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기독교인의 양심이라는 점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참된 부자를 한번 들여다보자!

누가복음 12장에서는 한 부자를 말한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재물들 금은보화를 끝없이 쌓아놓고 더 크게 창고를 짓고 여러해 쓸 물건들을 쌓아놓았다. 그리고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라고 했다. 그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라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은 결론을 강조하신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

영원한 멸망에 이른다면 부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참 부자는 이 세상만이 아니라 천국에까지 가야 참 부자라는 점이다.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난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 어리석은 부자와 반대로 지혜로운 부자가 한사람 떠오른다. 그 이름은 삭개오다. 그는 세리장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기 소유의 절반으로는 구제를 하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로 갚겠다고 했다.

즉, 부자가 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두 부자로 살면 좋겠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은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중심으로만 살았다.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을 모르면 근본을 알 수 없다.

잠언 1장 7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어리석은 부자는 이웃을 모르고 살았다. 대문간에 서 있는 거지 나사로의 헌데를 핥는 이야기가 누가복음 16장에서 볼 수 있다.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주겠다는데 부자는 거지나 나사로에 대해 어떤 배려도 없었다. 성경은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의 고통중에 들어가서 물 한방울만 달라고 해도 서로 건널 수 없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나 주님께서 영혼을 도로 찾으면 가야한다. 그리고 심판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한다. 생명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 부자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나사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누가복음 7장 38절에 용서받는 여인이 예수님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향유를 부어드리는 그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깊이 생각해보자! 누가 참된 부자인가?

본지 논설위원/ 군남반석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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