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아베 행동과 발언, 일제 36년의 ‘고난의 역사’ 몰각한 처사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를 성서의 가르침대로 냉정하게 묻자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일본 아베의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시작됐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제 전쟁이라고 해야 옳다. 일본 아베정부는 대한민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기로 의결했다. 일본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한민국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해온 기득권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역하다. 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언론보도만을 바라보며, 의연하게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정부를 믿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일본관광 취소 등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웃나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우리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배상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회담 당시 모든 것을 배상했다고 억지를 쓰면서, 경제보복의 문제로 크게 번졌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 36년의 치욕적인 식민지시대, 고난의 역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사과나, 개인 차원에서 보상을 받아 본적이 없다.

특히 한일합방 이전에 일본의 군국주의는 한반도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한반도가 일본 등 외세의 군화발로 초토화되었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본의 경제보복, 중국과 러시아의 대한민국 영공 침공, 북한의 8차에 걸친 미사일 발사, 미국의 한국에 대한 개발도상국 제외 등 연이은 사태는 구한말 당시로 돌아간 것 같아 참담하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본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의 진정한 이웃나라는 누구인가(?)를 냉정하게 묻고 있다.

한일합방 이전부터 우리는 우리의 일을, 우리의 땅에서 우리 스스로 결정해본 일이 없다. 일본의 한국 침략 역시 일본과 미국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을 무너트린 것도, 민중이 아니다. 외세가 무능한 이씨 조선을 무너트렸다. ‘가쓰라-테프트 밀약’은,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승인 했다. 이로써 미국의 양허로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가 노골적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에 대해서 보수적인 인사들은 인정하려 하지를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미국 트럼프와 일본 아베의 일곱 번 만남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 중 일부는 오늘날 이들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며, 친구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이는 보수적인 일부 정치인과 언론, 목회자들이 일본 식민지 아래서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이 땅의 젊은이들의 아픔을 몰각한 것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일본군총알받이로, 소녀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오빠와 아버지는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아리랑고개를 넘었다. 이 아리랑 고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갔던 당시를 연상케 한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의 무사귀환을 위해서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러한 아픔과 기도를 몰각하고서는 일본을 우리의 우방이며, 동맹이라고 운운 할 수 없다. 어떻게 우리의 동맹이며, 우방이라는 이웃나라 아베정부가 대한민국의 등 뒤에서 비수를 꼽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오늘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인사들은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며, 친일정부를 이 땅에 세우려는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것은 분명 정치적인 야욕을 민족을 팔아서라도 채우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이 또 다시 대한민국을 동맹이라고 말하면서, 등 뒤에서 비수를 꽂았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성서는 우리의 이웃을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성서가 말하는 우리의 이웃(?)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일본 아베정부의 경제보복은 이 성경구절에서 이탈한 것은 분명하다. 아베정부는 이웃나라인 대한민국을 향해 경제보복을 단행했다.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누가 보아도 이웃나라에 대해서 할 일은 아니다. 이런 일본과 군사비밀을 서로 공유하자고 말할 수 있는가.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나라이다. 일본과 동맹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본 황국신민이기를 바라는 보수적인 인사들은 아베에게 사죄까지 했다. 목회자의 입에서는 “일본 때문에 대한민국이 부자되었다”고 막말을 쏟아낸다.

일본 아베정부는 우리의 이웃나라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서 ‘한미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말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다.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제2차 세계대전서 패배한 일본이야 말로 대한민국 때문에 잘사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6.25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원시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을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고마워해야 할 나라이다.

오늘 일본 아베를 극찬하는 인사들은, 아베의 계략에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아베의 계략은 한국에 친일정부를 세우는 것이며, 둘째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이 앞서서는 안되고,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을 하는 나라,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전쟁 선포에 대한민국 국민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일본 식민지 아래서 대한민국의 국민은 왜적을 물리치는데 하나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랬다.

일제 36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말로써, 항일무장투쟁으로 일본과 맞섰다. 헌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인과 일부 기독교 목회자, 일부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친일적인 발언은 오늘 경제보복을 당하고 있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원수는 처음부터 원수가 아니다. 교류하고, 살아오면서 원수가 되었다. 오늘 대한민국은 친일파는, 일본은 공격하지 않으면서, 일본 경제보복에 맞서는 정부를 공격해, 정부가 실수하도록 만ㄷ들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일본 아베정부는 간교하다.

국민 간에 갈등을 부추겨 대한민국을 어려움에 처하도록 만들고 있다. 친일 정부 같았으면 이미 아베 앞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친일에 익숙한 인사들은 경제보복으로 대한민국을 곤궁하게 만든 일본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를 적으로 생각한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아베에게 사죄를 한 어느 교회의 권사는 8.15 보수집회에서 ‘회개하자’고 말해, 기독교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아베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일본인이지만 우리의 이웃인, 아베(?)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도 만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는 절대로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일본 사람도, 북한 사람도, 미국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민족이다. 성서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교훈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아베정부를 보면,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을 포기했다. 아베정부에게서는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성경에서 전혀 발견 할 수 없다. 아베정부는 타인을 이웃으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아베에게는 미국만이 이웃이다. 우리의 진정한 이웃은 타인을 이웃으로 받아드릴 때만이 진정한 이웃이 된다. 그래야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성경이 이웃을 받아드리지 않으면서, 타인의 이웃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이 해방되었다는 의미에서 축하금 2억 달러를 한국정부에 주었다. 그리고 한국을 일본에 복종하도록 했다. 오늘 아베정권을 두둔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인사들은 어찌 보면, 일본 아베정부와 일란성 쌍둥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베정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해방시켜 주었고,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파견해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주었기 때문에 우리와 혈맹이며, 우방이다.

그런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이웃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래서 일부 국민은 “미국이 도와 줄 것이다”고 굳게 믿는다. 요즘 미국의 행동을 보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닌가 우려된다. 1905년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와 일본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는 도쿄에서 가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을 상호 승인했다. 이로써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 한국교회는 영미의 선교사들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우리의 역사를 몰각한 것이다.

고난의 역사 몰각한 교회지도자

사실 영미선교사들은 정교분리를 주창하면서 한민족의 독립운동과 민족의식교육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사인 구약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오히려 항일운동을 벌이며, 민족의식을 교육하는 지식인들을 교회에서 추방했다. 3.1만세운동 이후 지식인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1920년 조선공산당이 창당되면서, 여기에 들어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20년은 조선공산당 창당 이외에도, 남산에 신사가 세워진 해이다.

한국교회는 남산에 신사가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했다. 요즘 통일교를 비롯한 신천지 등과 같이 반대했어야 옳았다. 한국교회는 여기에 침묵하며,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오히려 1938년 9월 9일부터 15일까지 평양서문밖교회에서 개회된 조선과 만주 27개 노회 총대 193명(목사 86명, 장로 85명, 선교사 22명)이 모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무장한 경찰관들의 보호아래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당시 총회장은 이문주 목사(경북노회·대구남산교회)였다. 평양노회장 박영률 목사가 평양노회 평서노회 안주노회의 연합대표로 신사참배를 결의하자는 제안했고, 총회원은 즉시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그리고 성명서를 발표한다.

“아등(我等)은 신사(神社)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려행(勵行)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있어서 총후(銃後)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한다. 소화13년(1938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까지 단행한 한국교회 선배 목회자들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입에서 친일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우리정부의 뒤통수에 비수를 꼽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분명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천왕을 신으로 섬겼다. 오늘 교회의 목사는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주일 낮 예배에서 설교했다.

분명 일본 아베정부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으로 확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대한민국은 분명 목회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축복받은 나라이다. 아직까지는 지진으로, 방사능으로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 가난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같은 민족을 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원수로 생각하고 있다. 남북한 민족 간에 이념적 갈등을 차제해 두고라도, 남한 민족끼리 좌우로 갈려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

국민 모두가 극복해야 할 일본 아베정부의 경제보복 앞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친 아베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우리정부가 망하기를 기다리는 국민이 엄연히 우리 국민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대부분의 국민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대처하며, 정부가 대책을 세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갈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세계민족 이웃으로 생각하고 함께 살아야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서 정부를 믿고 차분히 대처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겉으로 강경대응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둘러싸고 정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분명한 것은 한일 관계는 역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해결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과거 나약한 국가, 나약한 민족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국민에 의해서 민주화를 이룬 나라이다. 일본 아베정부는 경제적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민주적으로 성숙해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자신이 꿈꾼 군국주의 부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경제보복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굴복시키고, 친일정부를 세우겠다는 속셈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창설되고, 미군이 철수하면 그곳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에서 미군이 철수한 자리에 일본군이 들어와 한반도를 다시 군화발로 짓밟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일제 36년을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은 이를 용납할 수 없다. “일본에게 무릎 꿇는 일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국민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낸다. 이런 상황서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차분히 대처하는 국민들의 모습은, 일부 정치인과 종교인들과의 모습과는 다르게 의연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의식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3.1만세 운동 100주년, 민족해방 74년을 맞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새롭게 다짐한다. 일본 경제전쟁을 대한민국의 기회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내 비친다.

한국교회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이웃은 미국도, 일본도 아니라는 것을 역사적 교훈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오직 믿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불의는 공의를 이길 수 없다. 현재 일본 경제보복은 한민족에게 있어 까마득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천황을 신으로 믿는 일본은 언제인가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 국민들은 비록 곤궁하지만, 한반도에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정의로운 대한민국, 한반도의 평화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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