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욱 목사
 요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유난히 더웠던 2012년 여름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지치고 힘겨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시간은 빠른 화살처럼 지나고 어느덧 주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곧잘 불어오는 가을의 중턱에 서 있게 된다.

해마다 11월은 추수감사절이라는 우리 교회에 있어 큰 명절이 있는 시기이다. 많은 교회들이 이 날을 준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준비한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잘 아는 대로 영국 교회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에서 시작된다. 초기 120명의 필그림 파더스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 신대륙에서 1621년 첫 수확을 감사하며 드렸고, 1789년 11월 워싱턴대통령이 국경일로 정한 후 1941년 의회가 11월 제4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공휴일로 제정하여 지금에 이른다.

<구약성서>에서 유태인들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3대 명절을 지켰는데 민족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passover)과 첫 열매의 수확에 대한 감사절인 맥추절, 가을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초막절(Tabernacles)을 지켰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감사절의 영향으로 1908년 예수교장로회 제2회 대한노회에서 양력 11월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였다.

그 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음력 10월 4일로 정하였다. 1914년 제3회 총회에서 감사일을 11월 셋째 주일 후 수요일로 정한 뒤 현재는 11월 셋째 주일에 감사절을 지키고 있고 종종 추석을 기해 토착적 신앙을 이유로 추석을 기해 추수감사절로 지키기도 한다.

추수감사절은 102명 중 살아남은 53인의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한 후 그해 혹독한 겨울을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견딘 후 2년간 농사법을 배어 추수한 뒤 인디언 원주민 90명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유래된 것이다.

추수감사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나눔의 실천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후 초대교회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라고 하신 것처럼 공동체로서의 교제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2012년도 추수감사절을 맞고 있다. 다만 올 추수감사절은 좀 이르게 한가위를 보낸 터라 교회마다 맞이하는 내용이 좀 다르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이번 추수감사절이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 추수감사절은 교회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나 신앙의 선배들이 마을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 혹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함께 나누며 가진 것을 돌려 먹었던 우리 조상들처럼, 청교도들이 인디언 부족들을 초청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었던 것처럼, 서로가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바란다.

교회는 결국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발생하는 공동체이다. 사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산해 내고 그 패러다임을 통해 교회, 혹은 성도가 가진 것을 밖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생산과 소비가 그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면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해와 같은 처지에 이를 수 있다.

우리들만의 추수감사절이 아닌 밖으로 소비해 낼 수 있는 소비공동체가 돼야 한다. 내것, 교회것만 챙기는 풍요로움의 덫에 빠져 더 나은 가치를 잃고 마는 안타까운 교회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초대교회의 내외적인 풍성함에 거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백석) 사무총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