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1)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1)앉았더니/(중략)/너희는 가서 ㄱ)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중략)/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태복음 9장9-17절)

예수님은 유대사회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은 타락한 인간을 제어하기 위해 만든 법을 내 세웠다. 유대인 자신들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오클로스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핍박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보잘 것 없는 오클로스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본질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였다. 불행한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고서는 도와줄 수도 없고, 구원 할 수도 없다.

정치인들은 서민을 자신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민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주었다.(사도행전 16장 25-34절) 그것도 여인의 영혼을 고쳐주었다. 영혼의 죄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이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위대한 것은 고난당하는 이웃을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유대민족이 기득권자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며 고난을 당 할 때 자신과 동일시했다.

감옥에서 바울을 지키던 간수들은 “선생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바울은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했다.

그렇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서는 늘 이런 일이 일어난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죄에서 해방되는 일이 일어나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며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면서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된다. 바울과 신라를 지키던 간수는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기쁨을 얻었다. 가족과 노예 모두가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람은 좋은 일만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은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정적인 것만을 생각한다. 자기 안에 갇혀 있다. 죄에 잡힌 사람이다. 이사야는 새로운 미래, 하나님나라만을 생각했다.(이사야 43장 18-21절, 44장 21-23절)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미래를 대망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늘 주님 안에서 살며, 아이들을 칭찬하고, 가정과 이웃을 섬긴다.

이런 집안을 잘되는 집안이라고 말한다. 잘 안되는 집안은 아이들을 구박한다. 마누라를 구박하며, 매일 말썽만 일으킨다.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 안에 갇혀 이웃의 아픔을 모른다. 오늘 대한민국은 남과 북이 분열된 지 70년이 넘었다. 우리는 관념에 사로잡혀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 보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남과 북의 당국자는 물론, 국민 모두는 꼬인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병을 엄마가 고치는 것을 보아 왔다. 그것은 엄마가, 엄마와 아이를 동일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낡은 것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자.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내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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