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바울 목사.

가정의 달 5월을 맞았지만, 여느 해보다는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사회 전반을 멈추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린이 날 선물이나 어버이날 선물을 사려고 북적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멀리 떨어진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는 것이 코로나 사태 때 효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할 말을 다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을 찾아뵙지는 못해도, 자신들의 여행에 대한 계획은 짜놓았던 모양이다. 그동안 밖에 나가지 못해 오금이 저렸는지,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 기간 동안 제주도를 찾을 관광객들이 무려 18여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단적으로 제주도만을 대상으로 정한 숫자이니 전국을 대상으로 하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물론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고령자가 속해 있어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코로나19의 위험도가 낮을까. 아니면 자신들은 젊으니까 괜찮은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제주도 도지사가 나서서 제주도에 오지 말라고 할 정도다. 여전히 코로나19는 심각한 상태며, 잠시라도 주의를 소홀히 할 대상이 아니다. 과연 이들이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을 찾아뵐지 되묻고 싶다. 아마도 코로나19를 핑계로, 혹은 직장을 핑계로 찾아뵙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세상에서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이 어디 있는가. 낳아주시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 한 번 부모는 자신조차 백발이 되는 순간까지 부모다.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은혜와 같다. 그런데 생명의 어머니, 아버지를 머리 좀 커졌다고,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태도는 결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효’를 쉽게 한다.

십계명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성경말씀에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애굽기 21:15),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레위기 20:9) 등 곳곳에 부모공경에 대한 구절이 있다. 그만큼 부모에 대한 공경은 중요시 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인간의 얄팍한 생각으로 거역하거나 무시할 사항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하늘이 맺어준 관계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효를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대신할 수 없다.

작금의 상황이 어렵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부모에 대한 관심을 더 둬야 한다.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마음적인 거리라도 좁혀야 한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졌다고 마음까지 멀어진다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찾아뵙는 것이 가장 좋지만, 코로나19로 걱정이 앞선다면 요즘에는 시대가 바뀌어 영상통화로 부모님과 대면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하루하루 얼굴을 보며 안부를 여쭙고,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는지 살피면 된다. 그리고 다정히 안아주면 좋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마저도 어렵다면 쑥스러워도 ‘사랑합니다’라고 마음을 건네면 된다.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모습들이 그대로 습득이 된다. 효 교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거울이 된다. 자신은 부모에게 불효를 하면서, 자신에게는 효를 행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부터라도 효 실천에 몸에 쓰며들도록 하자.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힘든 상황에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기 완화되어 모처럼 야외로 나가려는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부모에 대한 효를 먼저 실천에 옮기는 것이 도리다. 모두가 지친 지금, 쉼처럼 찾아온 연휴기간, 이번만큼은 부모와의 물리적, 마음적 거리를 좁히고, 생명공동체로서 하나가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예장 호헌 증경총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