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정대협이 지난 30년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두 번에 걸친 폭로성 기자회견으로 정의기억연대(정대협)와 전 이사장 윤미향 씨에 대한 논란이 마치 폭풍의 언덕과 같다. 이 단체 이사장이었던 윤미향씨가 ‘할머니들’의 쉼터로 구입했다는 부동산을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사고팔았다든지, 기부 받은 돈의 입출금 장부가 투명하지 않다든지 하는 문제들은 사실을 확인하면 될 일이다. 이 문제의 난제는 다른 데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초반, 열악했던 활동시기를 거쳐 2000년 들어 위안부 피해 당사자,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에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의제화했고, ‘할머니’들은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 위안부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15년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쌍방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는 ‘불가역적 합의’ 이후부터이다. 그 사이 국제사회에서 전후 피해에 대한 한국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식민지 희생자인 ‘군 위안부’의 수치심과 고통을 극복하고 국가의 자존감을 찾자는 의식이 고양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위안부 운동이 ‘대중화’ 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기 소수 사람들의 순수했던 열정과 달리 운동의 중심인물들과 조직은 세월의 무게와 함께 스스로 정의가 되고, 권력이 되어갔음에도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한 데 문제의 단초가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30여년에 걸친 위안부운동은 장관(지은희) 또는 국회(이미경)로 진출하는 통로가 되었고, 윤미향 전 이사장 역시 제21대 국회의원이 됨으로서 내부의 역학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이를 수습하지 못한 것이 사태를 키운 꼴이다. 이번일과 연관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성찰을 모르는 정의는 불의 못지않게 위험하다. 예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게 위선적인 정의이다. 다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무능함과 탐욕으로 인해 사탄에게 기회를 내준 혁명이 부지기수이다. 우리 시대에 정의를 앞세워 권력이 된 이들은 유념할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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