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초대교회 시절 한 번의 전도설교를 하고 돌에 맞아 순교한 전도자가 스데반 집사이다. 그는 사도행전 7장의 말씀대로 뜨거운 가슴으로 전도설교를 하고, 그 설교에 성난 청중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스데반은 비록 그렇게 돌에 맞아 죽지만 천사 같은 얼굴로 자신에게 돌 던지는 청중들을 위해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기도드리며 숨을 거둔다.

스데반의 전도설교 중에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를 40년간 유랑하였던 그 때를 일컬어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한 세월은 무려 400여년이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지도로 종살이를 벗어나 해방공동체를 이루어 홍해바다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 광야 생활을 스데반 집사는 광야교회 시절이라고 표현 한 것이다.

광야생활의 핵심은 훈련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광야생활의 목표다. 그 기간이 왜 필요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한 기간은 무려 400여년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종살이를 하게 되면 종의 근성(根性)이 몸에 베이게 된다. 그런 근성이 치유되지 못한 채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새 땅에서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없다. 그러기에 40년을 광야에서 종의 근성(根性)을 제거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히브리어로 광야는 미드바르(MIDBAAR)이고, 이 명사 미드바르의 동사형은 드바르(DABAAR)이다. 동사 DABAAR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의미다. 광야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광야는 즐길 것도, 의지할 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다.

그리고 DABAAR에서 점 하나를 고치면 지성소(至聖所)를 의미하는 DBAAR가 된다. 성경에서 지성소는 하나님을 모시는 자리이고, 백성들의 죄가 용서 받는 자리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행진하는 동안에 가장 중심에 성막(聖幕)을 모시고 행진하였다. 그리고 그 성막의 가장 깊은 곳이 지성소 DBAAR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고, 마음 속 가장 깊은 곳 지성소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항상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광야는 Nothing lessness 즉 아무것도 없음의 자리이기에 오히려 하늘을 우러르고,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을 광야교회 성도로 살아간다. 의지할 것이라고는 없는 삭막한 세상에서 하늘로부터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산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다짐을 거듭하며 사는 것이다.

성경에서 광야가 지니는 의미는 두드러진다.

모세는 40에서 80세에 이르는 40년 세월을 누구도 없는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의 영적 능력을 쌓고, 길렀다.

엘리야는 호렙산(山)으로 가는 도중 광야 깊은 곳 로뎀 나무에 기대고 앉아 죽기를 구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음성을 듣고, 천사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았다.(왕상 19:4~5)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백성들을 향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 3:2)고 부르짖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며 사탄에게 시험을 치르신 일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광야(曠野/廣野)는 어떤 곳인가? 낮에는 불볕더위가 내려쬐이고,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하여 추위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곳이다. 이리 떼와 불 뱀과 전갈이 쏘다니는 곳이기에 하늘을 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소리를 듣기위해 귀를 기울이여야 하는 곳이다.

출애굽 당시 40년 광야생활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히브리력7월15일부터 1주간 초막을 짓고, 온 가족이 초막절(草幕節, Feast of Tabernacles)(민 29:12-40; 신 16:13)을 지켰고, 지금도 이스라엘 국민들 중에는 초막절에 온 가족이 광야에 나가 천막생활을 하며, 조상들이 살았던 광야생활을 재현하곤 한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엘리야가 광야에서 만났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광야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의 승리를 우리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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