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평화

어항 앞에 있으면
우리도 평화롭게 노니는
금붕어가 된다.
화려한 말보다는
아주 작은 말로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
우리도 행복하게 된다.
믿음이 있는 말을 주고 받는
정직한 세상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금빛 지느러미처럼
아름답고 밝은 마음으로
미움 없이 입 맞추며
우리도 살고 싶다.

▲ 문 현 미 시인
오랜만에 평화라는 단어와 마주한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평화라는 단어를 몇 번 되풀이 하면 어쩐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언제 평화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바쁘게 살다 보니 어떤 게 평화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4차산업혁명의 거센 물결과 더불어 들이 닥친 코비드19로 인해 지구촌 전체가 고립된 생활 속에 갇히게 되었다. 따라서 삶의 반경이 무척 제한적으로 바뀌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깃들게 된 것이다.

밖으로 마음 편히 다닐 수 없는 환경이므로 주로 집안에서 지내거나 사이버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시의 제목처럼 “작은 평화”가 그리운 때이다. 그전에는 잘 몰랐던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를 읽어 보면 시적 화자의 시선이 어항 앞에 닿아 있다. 어항 속 금붕어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평화롭게 노니는 금붕어”가 된다고 한다. 즉 금붕어처럼 그렇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이리라. 시인은 또 “아주 작은 말로/사랑하는 마음을 보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가까운 곳, 지극히 평범한 나날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의 중반부로 가면 수동적 자세로 임하던 화자가 능동적으로 바뀐다. 그전까지는 “-된다”라는 수동형으로 표현하다가 직접 자신의 바람을 드러낸다. “믿음이 있는 말을 주고 받는/정직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알맹이 없는 헛말, 진실의 탈을 쓴 거짓말, 쓸데없는 군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더욱이 “믿음이 있는 말”이 간절한 것이다. 마지막에 화자는 “금빛 지느러미처럼/아름답고 밝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시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는 시행을 연거푸 반복함으로써 그런 의지를 분명하게 표출한다. 시 전체에 “평화, 사랑, 행복, 믿음, 정직, 아름다움, 밝음”과 같은 긍정적 의미의 시어들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내재되어 있다. 작은 평화는 “아주 작은 말”과 “믿음이 있는 말”에서 가능할 것이다. 잠언 같은 좋은 시 한 편이 독자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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