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성경에는 사람이 복음을 듣고서 믿음을 가지게 되는바,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기쁜 소식”이되, 특히 가난하고 외롭고 깨어진 심령을 가진 자들에게 전파된다 (롬 1:17, 10:17). 기독교 복음의 전래와 함께 한국의 근대화가 촉진되었다. 한국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던 시기에, 갑신정변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던 1884년 무렵, 구한말 조선 땅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다툼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극도의 위험 상황 속에서 한반도를 구해내는 복음을 들려주셨다. 혼돈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고, 오늘의 한국이 세계 속에 우뚝 서게 된 것은 그 배면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 무엇보다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 학교, 병원, 사회사업 단체 등에 힘입어서 “구원의 길” (행 16:17)을 알게 된 수많은 기독교 선각자들과 인재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선교사들의 눈물과 순교의 터전 위에서 한국 초기 선각자들과 성도들이 깨우치고 일어나서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대한민국의 꽃이 활짝 피어났다. 우리 겨레가 자유와 민주와 사회정의, 인권과 평등을 깨달으며, 사랑과 책임을 인식하게 되는 근대적 의식을 갖게 된 것도 모두 다 구한말 미국과 해외에서 들어온 초창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헌신과 가르침에서 터득하게 된 것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기 그지없고, 온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이던 무지한 나라에 와서 목숨을 던져서 사랑을 실천한 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최근에 다시 연구하는 이들이 밝혀내어 교훈을 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한국인들은 과거를 해체하려는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여전히 경제적 욕망과 허영심에 바빠서 과거 불행했던 조국을 구해낸 진리의 빛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있다. 이제는 한 차원 높여서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드러냈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문화를 변혁시키고, 상황에 절망하지 않으며, 주권적으로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성을 드러내어 갱신을 도모해야할 시점이다.

우리는 작은 한 방울의 물방울처럼, 한국에 찾아온 선교사들의 헌신을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남긴 헌신의 수고를 헛되이 버리지 않고 사용하셔서,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작은 물방울 한 방울이라도 세미하신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로 전개되는 복음의 역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알렌 이후로 수많은 서양 선교사들을 한반도에 파송하여서 구원의 길을 알게 하셨다.

서울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는 미국인 230명, 영국 30명, 프랑스 25명, 덴마크 3명, 호주 12명, 벨기에 4명, 백러시아 54명, 캐나다 7명, 일본 1명, 스페인 4명, 한국 17명 등 국적을 달리한 외국인들이 한자리에 잠들어 있다. 양화진의 묘비마다 사역과 사연이 아로 새겨져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흔적들이 기념비로 세워져 있다. 전혀 모르는 나라를 향해서, 배를 타고 몇 개월씩 고생을 해야 동서양이 간신히 이어지던 백 년 전, 나라를 등지고 고향을 버리고 가족과 헤어져 이 미개하고 몰이해로 가득 찬 땅으로 들어왔던 선교사들, 전도자들, 그 분들은 정말 성령을 힘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분들이요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 땅에 묻힌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이들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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