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교회는 여성목회자들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각 교단서 여성안수를 받아들이면서, 여성목회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여성목회자들의 리더십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으며, 여성목회자들의 리더십이 그 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서의 중심에는 항상 여성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모세가 파라오 압제 밑에서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마음을 비운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사랑과 협상의 대가로 알려진 미리암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룻은 다윗 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를 않았다. 이들은 위대한 하나님을 믿으며, 여성으로서의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역사현장에 여성들이 중심에 있었다.
 
이들의 리더십을 숭실대학교 구미정교수는 ‘핑크 리더십’이라고 했다. 이것은 소외된 사람, 파라오의 밑에서 압제를 당하는 히브리인, 평화를 사랑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 권력으로부터 고난을 당하는 이웃 등 여성들이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에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70-80년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가 감옥으로 끌려간 대학생과 노동자들의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핑크 리더들은 항상 고난당하는 이웃의 뒤에서 유감없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여성들은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권력과 결탁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과감한 투쟁을 벌였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기도로 나라를 구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치마에 돌을 날라 왜적을 무찌르는 위대함도 보여주었다. 누군가 “여성은 위대하다”, “흙으로 빚은 남자보다도,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여성이 강하다”고 했다.
 
이렇게 여성들의 리더십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성서의 역사 속에 잘 나타나 있음에도, 봉건주의 사상에 찌든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여성목회자들에 대한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부의 여성목회자들이 남성목회자들의 조연역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으며, 일부 여성목회자들은 남성목회자의 노리개로 전락해 물의를 일으키는 것과 무관하지를 않다.
 
남성중심의 세상에서 여성의 역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여성목회자들의 상당수가 산으로 들어가 기도원 등을 운영하면서, 세속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여성목회자들은 사이비로 전락하거나, 교회의 질서를 스스로 무너트리고 있다. 무당 목사가 나오고, 춤으로 강단을 회칠하는 목사가 나왔다. 또 성서를 자위적으로 해석해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목회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우스운 것은 한국교회가 규정한 이단들의 뒤에는 이를 조정하는 여성들이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여성신학자들은 여성들의 리더십을 회복해 권력중심의 교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즉, 약자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랑의 리더십, 화해의 리더십, 평화의 리더십, 생명의 리더십을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아무튼 21세기는 평화와 사랑, 그리고 생명의 여성 리더십이 기대되고 있다. 여성목회자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과 권위, 교권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남성목회자들에게서는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경쟁력을 기대할 할 없다는 사실을 여성목회자 모두는 빨리 깨닫고, 여성의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질서를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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