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영 목사.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맞았지만, 명절 분위기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시끌벅적 북적여야할 전통시장은 한산하게 파리만 날리고, 귀성객으로 붐벼야할 플랫폼은 띄엄띄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만 있다. 모두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바꾸어 놓은 명절 풍경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일상을 바꾸어 놓더니, 이제는 명절 환경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모처럼 얼굴을 맞대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마저도 박탈해 버렸다. 더욱이 정부가 이번 추석만큼은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리만큼 올해 추석은 쓸쓸한 가을바람만 무성히 불 것으로 보인다.

연일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는 마당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오매불망 자녀들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고향 어머니, 아버지들조차 ‘올해 추석은 오지 말아라’고 속에도 없는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문구를 그저 위트 있다고 웃어넘기기에는 씁쓸함이 크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하니까, 오히려 ‘추캉스’(추석을 이용해 바캉스를 즐기는) 인파가 증가했다는 소식이다. 전국 여행지는 발 디딜 틈 없는 관광객들의 방문이 예고되어 있고, 숙박업소는 이미 예약이 꽉 찼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하니, 남의 고향에 찾아가서 민폐를 끼치는 셈이다.

방역당국이 고향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한 것은 추석을 기점으로 코로나 재확산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들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자식들 건강 걱정에 맘에도 없는 ‘이번 추석에는 오지 말아라’를 외치는 마당에, ‘기회는 이 때다’ 싶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놀러가는 형국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는 남들이 다 쉬는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119 구급대원, 경찰, 군인, 지자체 관계자들, 방역당국의 노력을 모두 허사로 돌리는 철없는 행동이다. 적어도 그들의 아픔에 동감하고, 그들의 노력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추캉스’란 단어조차 입 밖에 내어서는 안된다.

코로나19는 어느 한 사람, 한 단체만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천천히 나아갈 때 비로소 정복할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모두의 고통은 배가 된다. 이는 수개월에 걸쳐 코로나와 싸우면서 겪었던 위기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신천지발 코로나가 확산됐을 때 그랬고, 이태원발 코로나 확산 때도 그랬다. 마찬가지로 콜센터, 물류센터, 사랑제일교회발 확산 때도 이 불청객은 걷잡을 수없이 우리를 괴롭혔다. 단 한 번의 소홀함이 모두의 건강을 위험에 빠트린 것이다.

따라서 올해 추석이 또다시 코로나 확산의 통로역할을 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기주의적 생각을 버리고, 모두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고향방문 대신 여행을 떠나는 행위도 자제해야 한다. 국무총리의 “지금은 전대미문의 재난상황에 처해 있는 엄염하고 엄중한 현실로, 전쟁에 준하는 사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말처럼, 위기의식을 드높이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생활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붙잡지 못하면 코로나 극복의 기한은 그만큼 더 늘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올해는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만큼은 가까운 명절이 되길 소망한다. 무엇보다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 모두가 평안하고, 건강을 잃지 않는 명절이 되길 기대한다.

예장 합동개혁 총회장•본지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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