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일견 아합의 이 제안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듯이 보인다. 나봇의 포도원을 왕실에서 쓰는 대신에 더 좋은 포도원을 주든지, 아니면 돈으로 지불하겠다는 제안이 무슨 하자가 있는가 오히려 왕의 태도가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나봇은 왕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토지법에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기업으로서의 토지를 왕에게든, 누구에게든 팔아넘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봇의 거절에 속이 상한 아합 왕은 침대에 누워버렸다. 왕의 이런 태도에 왕후 이세벨(Jezebel)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왕후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바알 제사장)의 딸, 공주다. 군사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한 아합 왕의 아버지 오므리가 자신의 취약한 국내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이웃 나라와 정략결혼으로 시집을 온 이방 여인 왕후다.

왕후에게는 농민에게 거절당하여 상심하는 남편의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모든 토지의 주인인 친정아버지 엣바알을 보아오던 그녀에게 농민의 땅을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이 이해할 수가 없다. 이에 왕후 이세벨은 음모를 꾸며 나봇을 죽게 하고, 그 땅을 빼앗아 남편 아합왕에게 주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두 사람의 증인만으로 ‘누구누구가 하나님을 저주하였다는 증언’만 있으면 그를 죽일 수 있는 법을 뛰어 넘는 전통과 관습법이 있었다. 왕후는 가짜 증인 둘을 세워 나봇을 인민재판식으로 재판하여 죽이고 그 시체를 나봇 자신의 포도밭에 버리고는 포도밭을 가로챘다. 그러나 이런 악한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무사할리가 없었다. 선지자 디셉 사람 엘리야는 아합 왕을 찾아가 앞으로 될 일을 거침없이 선포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왕상 21:19)

훗날 에후 장군이 이끄는 군사정변이 일어나 아합 왕과 이세벨이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시체는 나봇의 시체를 던졌던 포도밭에 던져졌다. 토지에 대한 여호와의 법이 이렇게 엄격하고 지엄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레 25:23, 24)

땅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무엇이든지 만든 사람이 주인이다. 그래서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토지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토지를 맡아 경작하는 경작자들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토지를 매매의 대상으로 삼거나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

갑작스레 환자가 생기거나 위급한 일에 돈이 필요할 경우에 토지를 팔지는 못하지만 경작권을 양도할 수는 있게 했다. 경작권을 양도했을지라도 돈이 생기면 언제든지 경작권을 되찾아올 수 있게 했다. 이것이 레위기 25:24절에서 말씀하는 “토지 무르기”이다. 토지 무르기는 원래의 경작자가 언제든지 넘겼던 경작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규례다.

토지 무르기를 영어로는 Redeem이라 하고, 그 명사형이 Redemption이다.

구약에서의 토지 무르기가 Redemption인데 신약에서는 죄 사함을 받고 죄 속함 받는 것이 Redemption이다. 에베소서 1:7절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Redemption)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구약에서 토지를 되찾아 오는 법이 신약에서는 값을 치르고 죄 씻음 받는 법으로 승화 되었다. 구약에서는 경작권을 넘긴 땅에 대하여 땅 값을 치르고 땅을 되찾아오는 토지 무르기이고, 신약에서는 죄 아래 있는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피 값을 치르시고 구원하는 속량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을 기본으로 하고, 공산주의 경제는 노동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성경의 경제는 토지를 기반으로 한다. 지금 세계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본주의는 병들어 신음하고 있고, 공산주의는 아예 지상에서 사라져 꼬리가 문턱을 넘고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代案, Alternative)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바알의 저항이 더 거세어지겠지만 결국은 말씀의 법이 평정하실 것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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