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노래

다 벗어버리고
빛만 남기리라
도망가는 네 발목에까지
금빛 눈웃음 매달아주리라

어두운 수풀
발에 채이는 돌멩이까지
잘 비추며
사랑하는 사람아
가거라

미웠던 이에게는 손을 더운 손을
이쁜 이에게는 평안을 더욱 평안을
아아 그늘에 숨어 달라는 사람아 기억하여라
네 얼굴에 비비며 비비며 닮아간 내 얼굴을
그러다 또 차오를 내 얼굴을

그리하여 네 발자국마다
볼을 비비며 비비며
늙음을 곱게 삭히리라
또 삭히리라

 

-시집 『달빛 해일』에서

*김선영 시인 : 『현대문학』 등단. 경희대 국문과. 문학박사(성신여대) 현대시학 작품상 한국문학상 힌국시인협회 자문위원 등

▲ 정 재 영 장로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에서 사물은 객관상관물로 존재하여야 한다. 이 작품처럼 달이 존재의식을 담론하는 비유로 동원할 때도 등가성이 있어야 한다. 이때 원관념은 자기의 내면적 의식이지만 보조관념은 달의 이미지를 변용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달을 들어 제시하는 그림을 전경화라 한다. 이 작품은 그런 문학적 용어를 모두 설명하는데 아주 요긴한 요소를 갖추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기초적인 시창작의 이론과 함께 우선 살피면 달은 화자(시인)에게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 사물이 된다. 즉 화자의 모습이 달이며, 속에서 느끼는 정서도 달의 모습이다. 첫 연처럼 화자는 빛으로 노출된 심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둠의 속성을 버린 빛으로만 남은 존재다. 2연을 보면 이별의 아픔을 보여주는 떠남조차 빛으로 만드는, 아픔을 웃음으로 수용하고 있다. 화자는 ‘도망가는’ 사랑의 아픔을 달빛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3연에서 미움과 이뿐 마음을 구별하지 않고 빛의 초연함을 보여준다. 4연에서는 미련의 마음까지 초탈함을 보여준다. ‘비비’다가 닮게 된 즉 삶의 애환을 견디는 마음도 빛의 달로 변환을 꾀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떠나가는 발자국에게도 이해와 용납을 허용하고 있다. 빛은 세월을 삭히는 힘이다. 달빛의 순수함으로 견디어 내게 하는 ‘늙음’이라는 시간성을 통해 어떤 조건도 빛으로 초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움이나 예쁨의 관계를 초연해질 수 있는 원인은 달빛이다. 여기서 달빛은 시인의 철학이고 종교다. 이런 해설이 정답이라고 꼭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창작에도 이론의 바탕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시란 비유를 통한 언어기술인 것이라서, 잘된 시는 이론적인 토대가 분명한 것임을 알게 된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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