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덕 교수

타인 존중이란 사회적인 계층과 관계없이 서로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가사 도우미, 청소하시는 분, 경비보시는 분, 교수, 요리사, 회사 중역, 농부 등 다양한 직업이 있듯이, 아이들은 인종, 나이, 성별, 학력, 빈부, 직업 등에 관계없이 어려서부터 이웃을 사랑하고, 모두를 귀히 대해야 하는 법을 부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마가복음 12:31절에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이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성경 말씀이 모두 중요하고 귀하지만, 특히 남을 존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신의 인격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훌륭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남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인성발달측면에서도 ‘타인 존중’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는 타인도 존중한다고 봅니다. 삼상2:30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 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이 여기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항상 용서해주시지만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경멸이라는 징계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빈부와 권력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져가고 있는 듯합니다.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잉태하여 서로를 사랑하지 못해 무시하여 격한 싸움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것이 집단적으로 이어지면 집단적 이기주의가 발생하여 사회가 서로를 증오하고 불신하게 됩니다. 차별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서로 적대적으로 변하여 심한 갈등으로, 결국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2절에도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황금률입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타인 존중을 철저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타인 존중은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삶의 태도입니다. 어릴 때 배워야 어른이 되어서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선진국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타인 존중을 가르치는, 남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족일수록 서로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이런 가족의 구성원들은 남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런 분들은 서로를 밝은 미소와 격려로 대하십니다. 타인 존중에 대한 거짓 모습이 아닌 진정한 모습이 되려면 세상적인 노력으로 어려우므로, 신앙적인 삶을 유지해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상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서 우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정의 기초는 상대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아이들은 우정을 통하여 꿈을 꾸고,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하면서 행복해합니다. 우정이 없는 아이들은 자아 존중을 느끼기보다 이기적인 감정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즉 올바른 성격을 형성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정이 있는 아이들은 인성에도 문제가 거의 없고, 건설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서적인 안정을 유지하며 성장합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효능감이나 함께할 친구가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아이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견고하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안수집사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