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사람은 평생을 걱정하면 하루하루를 산다. 한마디로 인생은 살 어름판 위에 있다는 애기다. 그 만큼 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걱정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자식걱정, 생계걱정, 사업걱정, 남편걱정, 나라걱정, 교회걱정 등등 걱정 속에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근심걱정 모두 내려놓고, 모두 내게 와서 쉬라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근심걱정이 없는 나라이다.

영국 옥스퍼드 의과대학 연구팀은 웃음에 대해 연구하다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500번을 웃는다. 그런데 장년이 되면 이 웃음은 하루에 15~20번으로 감소한다"는 내용이다. 그 만큼 어린아이들은 근심걱정이 없고, 나이가 들면서 근심걱정이 많아진다는 연구결과이다. 하루에 4-5백번씩 천진난만하게 웃던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 기쁨을 상실한다.

웃음은 점차 줄어들고, 걱정과 근심은 웃음이 줄어든 만큼 많아진다. 우리는 가끔 기우(杞憂)라는 말을 사용한다. 가령 그 사 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 하다. 기(紀)는 나라이름(기), 우(憂)는 근심(우) '기(紀)나라의 걱정', 다시 말해 '기(紀)나라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이다.

이 기우는 중국 춘추시대의 기(杞)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급기야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나친 걱정이나, 쓸데없는 걱정은 사람의 몸을 해친다는 말이다. 미국의 목사이며, 저술가, 박사인 노먼 빈센트 필은 ‘쓸데없는 걱정’ 이란 글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걱정> 중에서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그리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말 <걱정>해야 될 것은 4% 정도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96%의 불필요한 <걱정>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렸다. 쓸데없는 것정을 하며 살아간다. 걱정은 불안을 야기 시킨다.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뺏앗아 간다. 적당한 <걱정>은 인생을 좀 더 긴장하게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우리 삶을 파괴시킨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 <걱정>의 강도에 대해 늘 생각하며, 그 강도를 낮추어야 한다. 적정선을 넘지 않게 <걱정>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일단 어렵겠지만 모든 <걱정>을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지금 내려놓아야 하는 <걱정>거리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자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정은 병을 낳고,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엣 성인들의 말을 기억하자.

쓸데없는 <걱정>거리들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잃어 버렸버린 기쁨과 웃음, 마음의 평화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평화, 샬롬이다. 우리가 힘에 의한 평화, 로마팍스를 부르짖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쓸데없는 <걱정>을 더 키우는 일을 하지 말고 서로 마음을 열어 대화하고 사랑과 포용으로 해결하자.

용서와 사랑의 상징으로 추앙받은 네델란드의 작가 코리 덴 붐(1892~1983)은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을 앗아간다."고 말했다. 그녀의 가족은 2차 대전 당시 유태인을 숨겨준 죄로 인해 유태인 수송소에서 다 죽임을 당하고, 그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 용서와 사랑을 외쳤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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