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종 문 목사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서로 다른 사람들, 지위와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귀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모두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는 교파주의에 매몰돼 분열과 갈등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이는 결국 자기 안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오늘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은 인간의 탐욕과 무질서가 만들어낸 재앙인 것은 분명하다. 세상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친교를 나누고, 사귄다. 의로운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끼리, 죄인은 죄인끼리, 노예는 노예끼리, 같은 인종끼리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원칙이다.

교회는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성령 안에서 화해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합일을 이루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서는 처절하게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목회자들도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과 교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예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을 잘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서는 거룩한 하나님과 추한 죄인의 만남을 얘기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이들과의 사귐이 신앙의 원칙이다. 이럴 때 인간의 삶은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교회는 인종적인 차이나,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서 종과 자유인이 한데 모여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는 곳이다. 성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끼리끼리 모이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목회자들도 만찬가지이다. 큰 교회 목회자끼리, 같은 교단의 목회자끼리, 박사목사끼리, 정치꾼끼리 모이는 곳이 바로 오늘날 교회이다. 교회 안에서도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한 자는 가난한자끼리 모여 반목과 갈등을 조장한다. 그렇다보니 오늘날 교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이웃교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한 소송사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회의 헌금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보다도, 소송비용으로 새어 나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교회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교회에 대해서 희망을 걸지 않는다.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친교를 나누는 사교집단으로 변질된 결과이다. 가난하고 무식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올 수 없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이들이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잊었다. 교회는 자기 안에 갇혀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쁘다. 교회의 문턱은 높아지고 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이곳을 교회라고 말 할 수 없다.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사랑하는 곳이다. 오늘 교회에서 사랑이 넘친다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 평화와 생명도 없다. 서로 반목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집단이 됐다.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는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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