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기독교의 이천년 역사를 통해 순수한 진리의 보급이 성경의 계시의 근거로 그대로 전해졌다면 현재 아무것도 문제 삼을 것이 없다. 그런데 기독교의 특징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일이다. 성경을 경전 삼아 믿음과 신앙의 행위를 하다 보니 어떻게 하는 일이 가장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의 행위인지 그 기준이 모호할 때가 있다. 시대 시대마다 성경을 자의적, 지식적, 종교적, 사회적, 논리적으로 해석하다보니 실제 한 두세대만 지나도 어떤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리고 문제는 성경의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 유일한 증거 자료로 존재하고 있다 보니 원본과 사본의 차이점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것도 기독교의 순수성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한다.

운영과 성장을 위해 기독교가 종교화를 위해 조직화 되다보니 성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교리화가 필요했다. 성경을 연구한 지식인들이 각자의 학문과 견해 그리고 지식의 차이로 인해 해석의 편차가 곧 교단분열의 원인을 제공하는 이유로 나타났다. 조직과 교리가 곧 기독교의 대명사가 되다보니 본래 영적으로 거룩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세상을 정화해야 하는 기독교가 우선 세력을 키워 세속 종교들과 대비해 우위를 나타내 자파의 세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기독교가 시작할 초기 모습과 이천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본래 모습은 형태만 있고 인위적으로 변형된 모습을 하고 있다.

기독교가 다시 초기 선교 시대를 연 사도들과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직 하늘의 복음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오늘에도 기독교의 회복은 처음으로 돌아가야 만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지금껏 성경과 거리가 먼 인위적으로 변경된 성례와 교리가 다시 본래 선경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만 하는데 갑자기 옛것을 들먹이자니 지금까지 편리하게 누려왔던 사회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본래 입은 옷처럼 익숙하여 벗어 던져 버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면 기독교 속에 침투해 있는 세속적인 것들이 무엇이 있는가? 과감히 도려 낼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먼저 교리부분으로 위장한 성경에 계시되지 않았는데 인간의 지식과 지혜와 관습으로 포장된 세례의식, 그리고 성경 말씀을 단편적으로 모아 놓은 출처불명의 사도신경 고백에 대한 성경적인 판단, 기독교 교단들의 난립으로 인해 분파가 주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폐해, 교회 조직의 근간을 이룬 각종 직분을 소명 의식도 없이 임직의 목적이 교회 주저앉히기 위함과 사회기업과 동일한 조직화로 인한 성(聖)속(俗) 불구분의 폐해, 교회의 건물도 사회의 기업처럼 최고급 건물을 성장의 기준으로 보는 견해와 비교되는 작고 초라한 교회로 인해 같은 하나님에 대한 사회인들의 인식과 시선이 곱지 못하다. 마치 크고 좋은 건물을 소유한 교회에 가는 것이 곧 축복이요 그렇지 못한 교회는 반대되는 개념에 대한 기독교 자체 해소방안 모색이 모호함과 동시 목회 성공의 잣대가 신자들의 영혼 구원 보다 더 중요히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실정이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당연한 이유가 실종 되고 신자들의 모임이 또 다른 사회의 한 단체에 머무른다면 교회는 세상에 존재가치가 상실되고 만다. 교회는 세상에 속해 있으나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신령한 모임이다. 이제부터라도 교회를 지도하는 목회자들이나 교회의 중심 부분을 이루는 신자들의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설립된 초대 교회의 모습의 행태를 따르지 않으면 결국 교회는 세상의 또 하나의 종교 군(群)으로 변질 될 것이다.

이제 기독교는 세상의 물량으로 경쟁하던 세속적인 생각과 희망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실 때에 하신 명령을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신자들도 초기교회의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모형 회복을 위해 지금까지 취득한 기득권이나 세상 물질로 구축한 거대한 예배당 건물과 남의, 내 교인 구별 없이 끌어 모은 신자들을 방출(파송)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의 고질병인 수백, 수천, 수만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물질 욕심, 인적 자원 욕심, 거대한 성전 소유의 명예와 권력 욕심을 전도인 기본자세인 전대도 두 벌 옷도 소유하지 않는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야 만 한다. 하나님은 헌금 궤에 연보하는 부자의 큰 돈 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셨다는 사실을 알자.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 부자 교회들은 눈을 국내의 어려움과 국제적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자들에게 교회의 뜨거운 사랑의 교제로 나눔이 어떨지?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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