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은 당신께서 이 땅에 태어날 장소로 다윗의 고향인 유대 땅 베들레헴 구석진 곳의 마구간을 택하셨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BC 27~AD 14)가 내린 호적 령에 따라 호적 하러 본적지(本籍地)지 베들레헴을 찾아온 요셉과 마리아는 머물 곳이 없어 마구간에 여장을 풀었고, 마리아는 그곳에서 해산을 했다.

베들레헴 마구간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나실 장소로 선택한 곳이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가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우리가 무엇이기에 저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롱한 별들 가운데 거하시던 전능하신 하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하셨을까. 주님의 그 뜻에 담긴 사랑을 조금이라도 읽고, 마음에 담았으면 좋으리라.

천사는 이렇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을 일컬어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전했다. 누가복음 2:10절 말씀이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온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다 기뻐할 너무나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 기쁜 소식이 무엇인가. '오늘날 다윗의 동네(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이다. 그들이 기다리던 구원자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태어나셨다는 전언이었다.

하나님은 원래 우리 사람을 지으실 때에 의도하신 목적이 있으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스런 파트너(partner)를 원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아름다운 파트너, 항상 사랑스럽고 기쁜 파트너를 바라셔서 사람을 지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제 마음대로 제 갈 길을 갔다. 그 결과 인간은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 속에 살아도 슬픔 밖에 남지 않는 허무한 실존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제 마음대로 산 죄 값으로 영원히 저주를 받아야 될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 우리 인간의 실존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인간을 회복시키기로 작정을 하셨다.

하나님의 결단으로 친히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로 비천한 사람의 몸을 입으시되 누구나 다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종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같이 흘리기를 원하셨고, 우리가 고통 하는 그 고통을 함께 체휼(體恤)하시기를 원하셨다. 우리가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주님도 당신의 몸에 채우시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 값을 치르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가 세상에 임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이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우리는 낙담이 아니라 소망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세상 사람들이 메시아 탄생을 기뻐했는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을 기뻐 춤을 추며 그 메시아를 영접했는가. 기뻐하고 영접한 사람은 비천한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메시아 예수님을 기뻐하고 영접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대 받고, 무시당한 사람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메시아의 오심을 기뻐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오시는 일에 쓰임 받은 요셉과 마리아도 평범한 시골뜨기 청년들이었다. 나사렛은 갈릴리의 63개 마을 가운데에도 그 이름도 올리지 못한 아주 후진 마을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하며 애통하며 고통 하는 중에도 주님을 사모하는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2020년 성탄절의 주님의 성탄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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