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주름살

 

마른 귀얄 스친 자리

잡초 밭 갈아엎는

쟁깃밥이 말린 두둑

헛기침 

너털웃음이 쓸고 가는

-시집 『솔잎 사이 은하 마당』에서

* 천강래 시인 : 해남출생. 고려대(교육학 석사) 『시조시학』 등단
시집 『이팝꽃 하얀 바람』 <정형시학 작품상>

▲ 정 재 영 장로

시조의 운율과 표현의 중요성을 동시에 잘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현대시조는 시 장르의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운율의 가락까지 들어가 노래(詩歌)의 예술성까지 있어 그 뛰어난 문학성은 현대자유시와 다른 멋과 맛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귀얄과 쟁깃밥이라는 두 단어를 해설해야 한다. ‘귀얄’은 풀이나 옻 따위로 무엇을 칠할 때 쓰는 돼지털이나 말총을 묶어 만든 도구다. ‘쟁깃밥’은 쟁기질을 할 때에 쟁기 날에 깎이어 나오는 흙을 말한다. 우리 순수한 말을 사용함으로 더욱 언어가 가지는 은근성과 친숙성에서 한국시의 오랜 가락이 깊이 배어나오는 맛을 알게 해준다. 종종 어려운 한자나 외국어를 사용해야 멋있고 내용이 깊이가 있을 줄 오해하나 대부분 어설픈 모습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시는 한국인이 오래 지녀온 말로 드러내는 경우에 그 말의 감촉만으로도 절창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첫 연에서 비유된 가야금 산조도 마찬가지다. 가야금은 우리 고유 전통 악기로, 산조라는 다양한 곡조 속에서 얻게 되는 청각성을 동원하고 있다. 즉 주름살의 특징을 격조 있는 모습으로 은유하고 있다. 아버지의 주름살은 단순히 염려와 걱정으로 생김이 아닌, 산조처럼 다양한 삶을 거친 연륜의 성숙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산조의 연주 즉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엇모리·굿거리·늦은자진모리·자진모리·휘모리·단모리(세산조시) 등의 장단구성의 다양성은 인생 경로의 다양한 모습을 말함이다.

인생이라는 잡초 밭을 농작하기 위한 쟁기질로 드러난 고운 흙의 두둑은 삶을 개척해가는 모습을 시각화한 비유로, 주름살의 함의를 보여주고 있다.

헛기침과 바람의 길도 동일한 정서다. 세월의 헛됨과 의미를 동시에 제시해주고 있다. 아버지의 주름살은 세월의 바람이 귀얄이 되어 쟁깃밥처럼 만들어진 모습의 은유다. 자유시나 정형시나 정서를 형상화해야 되는 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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