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5. 미국 북장로회의 한국선교사 파송 결정

한반도에서 열강의 각축 속에서 개화와 조정의 혁신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정변을 모의하고 있을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를 정점으로 중국과 일본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통해서 한국에도 복음을 들여보낼 준비를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의 대외 선교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해서, 필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나가는 섭리적인 관점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사역의 본질이라고 확신한다. 섭리사관은 모든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궁극적인 요인으로 삼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며, 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치적 해석으로 반미, 반외세주의라는 관점을 갖게 되면, 선교사역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 미국이 대외 팽창을 감행하면서 해외진출의 한 과정으로서 세계 각지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결국 “미국의 대외팽창주의와 관련되면서 백인우월주의에 입각한 기독교문화의 전파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도행전의 복음전파를 본 받아서 교회가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것일진대, 과연 미국 교회의 선교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에 온 최초 선교사의 파송과정에 대해서 역사적 의의를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측면을 주로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에 첫 의료 선교사가 되는 알렌의 소명과 준비, 둘째, 미국 북장로회 선교본부의 정책적인 판단, 셋째, 미국 북장로회 중국 산둥 선교지부에서 진행된 일련의 변화 등이다.

이런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한반도에 복음을 증거하게 하려는 계획이 성취되어졌다.

미국 북장로회 해외 선교부에서는 오랫동안 중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선교사를 파송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 북장로회 총회는 청교도 신앙과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오랫동안 복음전파를 위해서 교회가 노력해 왔고, 특히 선교사역에 매진해 왔다. 구한말 조선에 알렌 선교사의 파송과 관련하여, 미국 교회와 관련된 교회사 연구자들은 주의해야할 부분들이 많다. 광범위한 미국 교회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정확한 사료해석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미 북장로회의 선교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1613년 청교도들은 새로운 신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고 확신했다. 1651년에 존 엘리옷 (John Eliot, 1604-1690)이 “인디언들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파했는데, 1689년까지 6개의 교회와 교리문답 학습반을 18개반을 구성했다. 1741년에 미국 장로교회는 “구파” (Old Side)와 “신파” (New Side)로 분열되는데,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신파는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에 전도자 파송을 결의하였다. 1760년대에 서부 펜실베니아를 넘어서서 산악지대에 사는 인디언들에 대한 선교가 장로교회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이것을 그저 국내에서 이웃 동네에 봉사활동을 가는 것으로 평가절하려는 경향이 발견되는데, 타문화권에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목숨을 내 걸고 감행한 복음전파였다. 미국 산악지방 인디언이나 남서부 지방에 가는 것은 오늘날의 해외 선교에 나가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 드러리 박사는 「장로교인의 파노라마」라고 하는 특별한 선교역사 보고서를 출판하였다. 미국 연합장로교회가 1802년에 선교부를 결성한 후로 1952년까지, 무려 150년 동안에 걸친 미국 장로교단의 선교역사를 주요한 교단의 사건들과 신학적인 논쟁들을 겸하면서 상세하게 기술한 책이다. 1802년에 장로교회 총회에서 각별하게도 선교부를 구성하게 된 배경에는 제2차 대각성운동이라고 불리우던 부흥운동이 크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풀이하였다.

<계속>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