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상 원장.

봄이 오고 있다. 살을 애이는 칼바람에도 봄은 온다. 겨울의 깊은 잠에서 깨기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 마음은 봄을 향해 달려가지만 날씨는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이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까지 이어진다.

그래도 봄이 왔다. 겨울이 마음의 ‘얼어붙음’이라면 봄은 ‘풀림’이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겨울의 심장을 녹이는 봄바람은 따스한 화해의 기운이다. 얼어붙은 겨울을 지나야 풀림의 봄이 온다. 마음도 관계도 그렇다.

돌덩이 같은 가슴에 찾아온 꽃처럼 피어나는 이른 봄날이 왔다. 땅 속의 미물들도 긴긴 겨울잠을 끝내고 기지개를 하려는 듯 논밭으로, 들녘으로 기운을 내 뿜는다. 겨울의 찬바람에 죽은듯했던 실 나뭇가지에도 새싹이 돋아나며, 아카시아 웃음꽃이 피어난다. 시냇가의 버들강아지는 눈망울을 터뜨리고, 산에는 어느새 진달래, 철쭉들이 피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벚꽃이 기지개를 하며 웃는다. 시골집 담장 너머론 개나리가 담을 넘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얼어붙었던 산새들의 노랫소리에 하늘도 녹아내렸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자랑하듯 봄을 알린다. 누가 이토록 이른 봄날을 절절히 그려 놓았을까.

마스크를 벗고 꽃내음을 맡고 싶다. 봄은 알리는 향기와 메아리는 퍼져가지만 봄은 봄이 아니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봄은 사랑스런 봄이 아니다. 잔인한 날들이다. 지난 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랬다. 다시 봄이 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봄이 아니다. 봄이 두렵다. 성악가도, 시인도, 상인도 봄이 두렵다. 도대체 봄이 주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사랑스러움이 무엇인지 잊을 지경이다. 봄을 잊은 이에게 봄은 괴로운 인생의 한 조각이요, 시작이자 단절일 뿐이다. 마음과 삶이 무너지는 고난과 눈물을 안고 있다. 일상의 처절함으로 남는다. 고난의 계절을 지나는 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봄은 봄이 아니다. 고난의 봄에 필요한 건 위로와 치유이자 무너진 관계나 공동체의 회복이다.

봄 아닌 봄 같은 세상에 봄은 온다. 그러나 그 봄은 건물 안에도, 쇼윈도우(show window)에 갇힌 봄이 아니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민초들의 삶이 어우러진 들판에서 피어난다. 봄의 전령으로부터 말이다. 추위를 녹이며 훈풍이 불어오고 햇볕도 따사롭다. 봄 길의 꽃씨를 뿌리고 꽃길을 여는 그들이 있기에... 봄의 전령으로서 교회는 고난당하는 이들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비판하는 교회의 아픈 치부와 부패의 고리를 끊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라. 회복의 세대여 일어나라.

봄은 생기를 준다. 생기는 죽은 것을 살린다. 아름다운 생명이 끝나면 추해진다. 생명을 주는 능력이다. 생명이 있기에 아름답다. 생명이 있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고 가치가 있다. 여기에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어느 시인이 봄을 봄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 어떤 화가가 봄을 봄처럼 그려낼 수 있을까. 죽은 고목나무 같은 인생에게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까.

봄은 늘 봄으로 존재하겠지만 사실 바라봄이다. 고개를 들어 그대를 바라본다. 바라봄은 관심이자 위로다. 바라볼 때 살아있다는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아니 신비스럽다. 내가 그렇고 가족이 그렇고 이웃이 그렇다. 몰랐던 삶에 경외감마저 든다. 돌이켜 처절한 절망 속에서 새로운 영혼으로 봄을 쳐다보니 봄은 이미 봄이 되었다.
고난의 봄은 은총이 깃드는 시간이다. 하지만 자유와 풍요, 화려한 겉모습에 매몰된 채 홀로 십자가지고 가신 그분처럼 그렇게 동행하지 못한다면 영혼의 고갈을 회복할 수 없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시던 그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고 피땀흘려 기도하시던 그 옆자리가 우리의 자리가 되며, 십자가 지고가신 그 길을 따라갈 때 그래도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꿈꾸는 봄은 영혼의 봄이다. 옥토같은 대지에 꽃들이 만개하듯 피어나는 그런 영혼의 봄날이다. 사랑과 찬송으로 넘치는 감사로 가득 찬 인생의 봄이다. 그 맘에 훈풍이 불고 햇볕은 따사롭다. 봄은 그분과 함께 이미 내 마음에 와 있다.

내 영혼의 봄날이 왔다. 그래서 봄이 좋다. 그분과 함께 동행하기에 더욱 좋다. 사순절이 시작된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금식(禁食)과 금육(禁肉)을 통해 절제하는 생활을 통해 갈라진 이 땅에도 어둠이 물러가고 봄이 왔다. 더 이상의 갈등과 분열, 전쟁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화의 부활아침 같은 봄이 밝아 온다.

봄은 언제나 새로운 부활이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각오로 마음을 찢고 통회함으로 어두운 이 땅이 밝아오는 부활의 영광이 임하는 새벽을 맞는다. 고난이 인생의 마지막 고난이 되고 찬란한 영광이 빛나는 새로운 부활의 아침을 맞고 싶다. 추위와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복음’만이 민족의 희망의 등불이자, 이 민족의 부활이다. 고난의 봄을 지나며 시대의 어둠을 몰아낼 등불을 높이 들어본다.

고난의 봄에 그대를 바라본다. 고난당하는 그대와 함께하고 싶다. 언제나 마음만은 포근한 봄날이고 싶다. 고난가운데서 동행하며 깊은 대화와 묵상으로 봄을 바라본다.

시인, 칼럼니스트, 근대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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