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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목사] 친일 선교사의 행적 재조명 절실하다
김명환 목사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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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10  1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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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명 환 목사

 선교초기 한국에 들어온 일부 영미선교사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알렌의 행보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아픔에 함께 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교회가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3.1만세운동에 협력적이었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몇 명의 선교사는 한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드린 것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는 3.1만세운동에 참여한 한민족, 특히 기독교인들을 불순한 세력, 폭도로 매도했다는데 안타깝다.

그것은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보는 의식에서 엿볼 수 있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본국 선교부에 보낸 보고서는 3.1만세운동에 참여한 한국인을 ‘불순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했다. 또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불평분자’로 매도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인에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인식했다는데서, 영미선교사들이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드리지를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였던 아서 브라운 박사는 “일본의 한국 통치가 세계를 위해서 최고의 유익이며, 한국인에게는 행운이 되는 시기이다”고 일본 식민통치를 정당화 시켰다.(아서 브라운 저 <극동의 지배>) 에비슨도 “조선인은 일본지배 아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언명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말하는 모펫 역시 “일본인이 한국에 가져온 물질적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감리교의 노블도 일본 총독부 권력자들과 협력을 적극 주창했다.

이외에는 한국인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웰치 감독은 “3.1만세운동 등 민족운동에 가담한 한국인 대다수는 기독교인 아니었다”고 기독교인들의 항일운동을 부정했다. 스미스를 비롯한 일부 선교사들은 한마디로 “일본이 ‘박애적’ 식민주의를 행한다”는 논리를 펴는 일본 변호론자였다. 스미스는 3.1만세운동에 참여한 한국인을 “‘불평분자’들에 의한 반정부운동이다”고 매도했다.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한국인을 “덜 씩씩하고, 더 야심차며, 덜 독립적이다”고 폄하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에 대해 “무지하고, 비위생적이며, 돼지처럼 더럽고, 거짓말을 잘하는 민족이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미국 선교사들의 의식을 미루어 볼 때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는 한국교회의 평가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메켄지는 선교사들의 이런 조작에 대해 “한국인들, 더욱이 여자와 아이들의 맨주먹 항거에, 일본 헌병과 경찰의 만행, 여기에다 선교사들의 ‘매스꺼운 위선까지 첨가하다니’”하고 개탄했다. 즉 선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은 친일노선과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헤밀톤은 “선교사들은 미국 문명을 가르치고 나서, 기독교가 바로 서양문명의 기본이라는 것을 성급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양품시장을 열었고, 서양 상품선전에 열을 올렸다. 시장에 서양 상품을 공급했다. 또 과수원도 경영했다. 하숙과 여관을 경영하기도 했다. 미국수출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은 물론, 시장개척을 알선해 줌으로서 이득을 철저하게 챙겼다. 여기에는 ‘자비량선교’가 철저하게 적용됐다. 언더우드는 석유, 석탄, 농기 등을 수입했고, 알렌의 선교직원이었던 그레함 리와 모펫 등은 압록강변 채벌권을 얻어내 약 3천 그루를 벌목했다.

그레함 리는 한국정부가 세금을 부과하자, 이것이 불법이라며 생떼를 쓰기도 했다. 1884년에 들어온 알렌의 상업행위는 그 어느 선교사들보다도 두드러졌다. 알렌은 황실을 등에 업고, 최초의 전차노선, 최초의 도시발전소, 상수도, 전화시설, 현대식 관청건물 등의 상업권을 얻어 미국의 사업가들에게 중개했다. 알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국내의 중요한 모든 재정사업이 우리들의 것”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 말속에는 피압박민족, 가난한 민족의 설움이 그대로 배어 있다. 그의 상업행위는 여기에서 멈추지를 않고, 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한 운산지역의 금광 채굴권을 얻어냈다. 알렌이 미국국무부차관에게 보낸 전문에 “한국인들은 인디언과 같이, 흑인들보다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적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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