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사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부활절이다. 한국교회는 올해도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림으로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한국교회는 교단 분열의 역사와 함께 연합기관도 교단의 정파적 색깔에 따라 나뉘었다. 그러나 부활절만은 하나 되어 드리자는 뜻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를 함께 드리는 전통을 한동안 고수해왔다.

그러나 분열에 길들여진 한국교회에 부활절만이라도 연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기총에서 한교연, 또 한교총이 만들어지면서 매년 외형적으로나마 연합의 모양새를 갖추려는 시도는 계속돼 왔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도 각 기관은 각기 따로 부활절 예배를 드리면서 여전히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각자 자기 나름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외형과 규모가 크든 작든 진정한 연합의 의미와 상징성를 부여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교계에 작은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한교총, 교단장협의회가 4월4일 오후 4시에 사랑의교회에서 개최하는 부활절 연합예배에 한교연 대표회장이 참석해 환영사를 하는 것은 분명 예년과 달라진 점이다. 또 같은 날 오후 2시에 군포제일교회에서 열리는 한교연 주관의 부활절연합예배에도 한기총 전현직 임원 다수가 참석해 순서를 맡는다고 하니 이 또한 새롭다.

연합기관이 주관하는 절기행사에 다른 기관의 대표 등이 순서를 맡아 참석하는 것만 가지고 마치 큰 변화가 있는 양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런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내면의 진정성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연합기관의 분열 이후 이어온 경색된 분위기로 볼 때 이마저도 예사롭지 않은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교총 공동대표인 소강석 목사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놓고 누구보다 목소리를 키워왔다. 교단이 이 같은 의지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도 큰 힘이다. 교계 일각에서는 이마저도 냉소적으로 보는 기류가 존재하나 거대한 물줄기가 시작되면 잡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 하나 되어야 한다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으나 오히려 하나 더 만들어졌다. 양보, 희생이 없는 구호는 종종 진보 대신 후퇴를, 개선이 아닌 개악을 만든다.

무슨 일이든 당위성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추진 동력이 될지언정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나무에 꽃에 피고 탐스러운 열매가 달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심고, 사람이 부지런히 거름 주고 가꾸는 노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교회의 연합은 마치 유리병처럼 깨지기는 쉬워도 다시 붙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 의지를 가지고 두드리고 두드린다면 그 어떤 철옹성이라도 언젠가는 열리게 되어 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씩 일곱 번 돌아 무너뜨린 것처럼 말이다.

2021년 부활절이 비록 교계가 좋아하는 ‘100주년’ 같은 유별나게 의미있는 해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절망하고 위기에 빠진 한국교회에 작은 희망이 되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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