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 라"(엡 6:1~3)/십계명 제오장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장 1-17절)

성서는 분명하게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말에 순종하라고 교육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파라오 밑에서 종살이 할 때, 온갖 수모를 당하는 등 고난을 당한 부모의 삶을 잊지 말라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었다. 성서는 단호하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헌데 오늘날 인간 중 패륜아들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한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모를 내다 버린다.

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말에 순종하며,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부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가족 간에 사랑하고, 화목해야 하는 것은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오늘날 상황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난치지 않다. 그리고 이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툼이 없다. 분열이 없다.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 100주년 기념 선물로, 프랑스 조각가 바르톨디에게 자유의 여신상 제작을 의뢰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시작 할 때 걱정이 있었다. 바로 이 여신상의 얼굴을 누구를 모델로 삼아 조각할지가 문제였다.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물망에 올랐다. 아름다운 여배우, 유명 정치인, 엄청난 재벌 등 사회적으로 크게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모습이 추천되었다.

하지만, 바르톨디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생각하고, 수호하는, <자애>로운 여신의 얼굴을 조각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얼굴은 누구인가?’ 결국, 바르톨디는, 많은 고심 끝에 자신을 낳아 기르고, 사랑해주신 어머니를 모델로 삼기로 했다. 바르톨디에게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얼굴은, 바로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제작과정에서 연로하신 어머니가 오래도록 같은 포즈를 취하는 데, 힘들어하자 어머니를 닮은 여자를 모델로 해서 작업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작업이 끝난 후, 브르톨디는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렇다. 자애(慈愛)란? 자(慈) 사랑 자, 애(愛) 사랑 애, 아랫 사람에게 따사롭고, 돈독한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이 <자애>로움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마음이다. 무조건적인 사랑, 계산되지 않는 아카페 사랑이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부모들은 세월과 상황에 상관없이 내면에 빚어지는 <자애>로움이 항상 존재한다. 그리서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사랑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자애>로움은 2천년전,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한없는 <자애>로움이다. 죄악 속에서 재산을 탕진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던 아들이 돌아 올 때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동네사람을 불러 잔치를 연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일본군에 끌려가는 아들과 딸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매는 목자의 사랑, 잃어버리지 않은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귀하게 여기는 계산되지 않는 사랑이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는 이런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사랑만이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다. 남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사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조건적인 사랑과 계산적인 사랑은 각자의 가슴 속에서 고인물과 같이 섞고 만다. 무조건적 사랑, 계산하지 않는 사랑은 한 사람의 가슴에서 다른 사람의 가슴, 또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흘러흘러 썩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사랑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인간의 본래 모습도 잃어버렸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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