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성수 목사.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부활주일이 은혜롭게 지나갔다. 저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금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다. 한국교회도 모처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예년처럼 부활절의 전통성을 두고서 연합기관끼리의 다툼도 일어나지 않았고, 진보나 보수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 소멸과 한국교회 예배 회복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말 그대로 어느 해보다도 주님만 붙들고, 낮은 자의 심정으로 경건하게 보냈던 부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부활주일에 지났다고 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오히려 지금이 한국교회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더 낮아지고, 섬기며 교회의 본질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자칫 한 번의 그릇된 행동이 그동안 잘 쌓아왔던 이미지를 순식간에 무너트릴 수 있다. 부활주일 울부짖었던 코로나19 소멸을 위한 기도소리가 전국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려야 한다. 코로나가 더 이상 인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그 순간까지 매일, 매시간, 분, 초 단위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각 나라에서 백신을 맞고 있지만, 변이 바이러스는 또 웃고 있다. 인간의 방법만 매달린다면 불청객인 코로나19는 쉽게 떠나가지 않는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이 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고통 받는 인류를 구원하실 분이다. 이전보다 더 뜨겁고, 크고, 자주 하나님에게 “이 땅에 코로나19를 소멸시켜 주시옵소서”라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크고 깊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멈추지 말아야 하다. 부활주일에만 보여주기식으로 반짝하는 나눔과 섬김이 아닌,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나눔과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나눔과 섬김 사역에 소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며, 누구보다 나눔과 섬김에 앞장서고 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나눔과 섬김의 발걸음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서서 소외된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100에서 30을 나눴다면, 40-50까지 나누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존재할 이유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도 오늘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굶주리고, 보잘 것 없는 우리 이웃들의 동반자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완성될 수 있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또 잘하고 있지만, 더욱더 소외된 이웃을 향한 나눔 실천에 심혈을 기울이길 바란다.

올해 부활주일은 예년과 달리 한국교회 안에서 불협화음이 적었던 해이다. 코로나19라는 대명제 앞에서 모처럼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활주일 전국에서 동시에 코로나 소멸과 한국교회 예배회복을 담은 염원의 기도소리는 그것을 잘 대변해 준다. 그런데 부활주일이 지났다고 이제 다시 남남처럼 행동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앞으로도 계속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동성애, 차별금지법, 이단사이비 등을 위해서 한 목소리로 기도해야 한다. 이념과 사상, 진보와 보수가 아닌, 오직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인류를 위협하는 대명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도하고,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갖가지 악한 것들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교단만 200-300개가 넘을 정도로 분열과 갈등의 상징이었던 한국교회도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고, 화합과 일치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여름을 앞두고 푸르른 잎들이 풍성한 계절, 한국교회 안에 새로운 희망과 소망을 품고,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총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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