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필자는 2012년에 여수에 엑스포에 다녀오면서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기념관을 경유해 오면서 사진 몇 장을 남겨 왔다. 무심코 사진을 정리하던 중에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라는 흑백으로 된 ‘손양원’ 목사님의 친필을 보면서 가슴 뭉클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글의 내용은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길이 되리라"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가르침이라 한다. 이 글은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만철 이사(滿鐵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당한 ‘안중근’ 의 순교 39주기에 “김구” 선생의 가르침의 말씀이 ‘손양원’ 목사님의 가슴에 되새겨졌던 것 이다.

과연 우리에게 애국이란 무엇이며, 순교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우리의 현대사에는 애국자 아닌 사람이 없고 순교를 각오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두리번거려 보아도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로는 “매국노”, “악마의 사자”들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평안이 없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주는 평안만이 참 평안이라”하셨는데 내 힘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러나 ‘김구’ 선생님, ‘안중근’ 의사, ‘손양원’ 목사님 등께서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으셨을까? 아니, 예수님께서 자리하고 계시면 되지 뭘 그리 신경을 쓰는가? “머리털 빠지게!”

오! 믿음이 대단하시군! 역시 신학에 정통하시니,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정답을 주시는 구려! 그러나 친구여!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세! “예수님을 본 자가 곧 하나님을 본 자”라 하셨고, 그 예수님께서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 말씀을 잊었는가? 과연 우리는 ‘김구’ 선생님이나, ‘안중근’ 의사, ‘손양원’ 목사님 등이 과연 우리 이웃이라고 생각이나 하는가? 물론 그분들이 천국에 가 계시니 이제는 다른 이웃이 있을 것이네만, 그 분들마져도 가슴에 품지 못하는 이들이 과연 예수님은 품고 있을까?

허! 허!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보냄 받은 ‘김구’ 선생님의 가르침을 못 잊어, 붓 끝으로나 담아내고, 주님께서 명하신 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손양원’ 목사님 등은 어리석은 분들이었을까?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혼란스럽다고 생각지 않는가?

누가 사이비인지 누가 거짓된 자들일까? 어떤 자들이 복음의 탈을 쓴 이리들일까? 참으로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병자호란 때 오랑케, 매국노, 일제의 앞잡이 등, 추함을 모르고 탐욕으로만 가득하여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면서도 자기들은 선량이라고 외치는 자들은 누구일까?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돌아보세! 내가 걸어온 눈길에는 어떤 발자국이 남겨지고 있는가 말일세! 뭐라고?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눈길이 아니라 ‘사막 길’, ‘광야 길’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 참으로 명답일세!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친구가 생각하는 그 “명답”에 어떠한 보응 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가정의 달에 가족을 사랑하듯 이웃에게 행함이 애국애족의 시작은 아닐까?

(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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