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 제41주년을 맞았다. 이 운동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책임자 처벌, 당시 죽임당한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주검이 아직도 속속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41년이 지난 광주민주화운동은 미완의 운동이며, 앞으로 밝혀내야 할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광주 민중들의 죽임으로 내몬 책임자도 국민들이 납득 할 만큼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신군부에 참여했던 일부 양심 있는 계엄군이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필자는 계엄령을 확대 선포됐던 그날을 기억한다. 그날 이 땅의 일부 지식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식인은 숨을 죽이며, 골방으로 숨어들었다. 언론이 통제돼, 광주로 가는 길목이 가로막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간간히 뿌려지는 유인물을 통해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계엄군을 대변하는 지라지에 불과했다. 해외에 보도되는 것과는 달리 국내언론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부 불순분자에 의해 자행되는 것처럼 보도됐다. 이 보도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은 광주시민들이 왜 분노하는가를 알려고 하기 보다는, 광주시민들을 불순분자, 폭도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광주시민들의 아픔을 몰각한 채 수 십년을 살아왔다. 지금도 일부 국민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군과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이해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오늘도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빨갱이 또는 폭도로 매도한다. 40년이 지나는 동안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조금씩 드러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아 다행스럽다.

늦게나마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해외언론들도 40년전 그날에 주목하며, 재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본을 비롯한 홍콩, 미얀마 국민들이 광주민주화운동에 주목하는 이유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늘 홍콩민주화와 미얀마 민주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 <요미우리신문> 16일자에 “미얀마 현지에서 한국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데서 알 수 있다.

광주민주화를 경험한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시민들로부터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도 벌였다. 한국에 체류 중인 미얀마인들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이에 미얀마 국민들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달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공감했다. 그렇다. 미얀마 국민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공감하고 있다.

이렇듯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세계 여러 나라 민주화운동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은 현제 진행 중이며,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의 진실 또한 국민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만큼 밝혀져야 한다. 당시 행방불명된 가련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암매장 장소를 찾아내 발굴 작업도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산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영화 <택시기사>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아우성소리를 듣고, 이들의 ‘한의 소리’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늦었지만 이들의 아우성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 결과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미얀마 주재 일본인이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군부 쿠데타 이후 인상이 좋아진 나라’를 물었다. 89%가 한국을 꼽았다. 일본은 46.9%에 그쳤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를 비롯한 영화, 연극 등 국내 문화예술계 단체 37곳과 개인 355명은 “미얀마 문화예술계의 용기 있는 저항을 지지하고, 군부의 야만적 탄압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그리고 미얀마 군부를 규탄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은 군부 쿠데타로 고난을 당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아우성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우성소리를 듣고 미얀마 국민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대한민국 국민의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후퇴해서도, 양보해서도 안 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발견했다.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계승해 선거와 촛불시위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그것은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아우성, ‘한의 소리’. ‘피의 소리’를 듣고 행동한 결과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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