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희 목사.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우다 보면 늘 가슴을 졸이게 된다. 특히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는 아직 위험한 일에 대한 분별이 없어 어른의 관심과 주의가 늘 필요하다. 성장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쁜 친구를 사귀어 탈선하거나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해 인생에 큰 어려움을 당할까 걱정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늘 자녀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하물며 영적인 일은 오죽하겠는가. 하나님은 주의 자녀가 말씀대로 살아 영육에 늘 축복받고 행복하게 살길 원하신다. 하나님과 말씀을 알면서도 신앙을 버리고 타락하여 세상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랑의 매를 드셔서 깨닫고 돌아올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시대에 경건한 왕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짓을 서슴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를 도구 삼아 심판하셨고, 심판의 결과는 처참했다. 전쟁에서 패하고, 적국의 포로가 되어 열방 중에 흩어졌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초토화되는 소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에 빠졌다. 완전히 망해 포로로 잡힌 이스라엘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회복의 말씀을 던지신다. 여호와의 종 즉 예수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자유와 회복을 주실 것을 예언하신다. 포로에서 해방하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구원을 베푸시는 보수하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언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숨을 넣어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온 인류가 죄의 아래 거하게 되었다. 인간은 절대 스스로 사망의 독을 해독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원죄와 자범죄를 갈보리 십자가에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하셨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보수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끌고 왔다. 당시 율법으로는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 그러나 주님은 땅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쓰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무리가 돌아갔다. 창피하여 고개도 들지 못하고 땅바닥에 엎드린 여인에게 주님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라”고 죄를 사해주신다. 상한갈대와 같은 심령을 회복시켜 주님을 사랑하고 큰 믿음의 소유자로 보수하셨다.

우리 주변에 마음이 상처받고 찢어진 심령을 가진 영혼들이 정말 많다. 경쟁사회에서 나 하나 살기 위해 남을 정죄하고 무너뜨리다 보니 마음들이 갈기갈기 찢기고 상처가 나있다. 육신의 문제 뿐만아니라 불면증,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산다. 사단은 평안이 아니라 불안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회복시키시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신다. 재림예수님은 신랑으로서 신부를 데리러 오신다. 흠이 없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름다운 준비된 신부를 찾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어떤 죄인이 온다 할지라도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된다. 절대 망신줘선 안된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그 사랑을 생각하며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으로 보듬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할 때 천하보다 귀한 그 한 영혼을 주님이 보수하시고 회복시켜 아름다운 신앙의 소유자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보수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의 삶과 가정에 나아가 이 나라 위에 방문하는 한주가 되길 기도한다.

분당횃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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