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평화(샬롬)를 외치자

6월은 호국의 달이다. 6일은 현충일이고,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1년이 되는 행이다. 대한민국은 광복 76년, 분단 76년을 맞았다. 그럼에도 한반도 전역에서는 전쟁의 긴장이 멈추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남한의 보수적인 일부 인사들은 남한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긴장관계에 있는 남북한의 관계를 더욱 긴장상태로 몰아넣는다. 이는 남북한 전쟁을 하자는 말로 들린다. 이런 상태로는 남북한 민족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될 수 없다. 이것은 예수님의 평화(샬롬)에서 이탈한 것이다. 모두가 로마팍스(힘에 의한 평화)를 노래한다. 남북한 민족은 성령 안에서만 하나 될 수 있고, 평화(샬롬)를 이룰 수 있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은 한국교회는 독일 통일의 중심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의 한가운데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노래해야 한다. 이것은 미완의 광복을 완성하는 것이며, 성령 안에서 남북한 민족이 하나 되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명령이다. 이를 방해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죄에 올아 멜 궁리만 하는 바리새파와 다르지 않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싸움, 국내의 국론분열 등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로마평화(팍스)를 내세운 빌라도의 이데올로기, 종교적 관념과 제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광복 76주년, 남북한 분단 76년, 6.25한국전쟁 71돌을 맞아 본지는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성령 안에서 남북한 민족이 하나 되는 행진에 참여하자고 제안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진영싸움으로 인해 분열과 갈등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는데 안타깝다. 오늘 대한민국의 진영싸움은 남북한이 하나 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남북한 민족 모두가 로마팍스를 부르짖으며, 남북한 민족 간에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것은 분열의 아픔이며, 남북한 민족의 아픔이다. 성령을 몰각한 결과이다.

그 어디에도 예수님이 바라던 평화(샬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빌라도와 유대인의 이데올로기와, 제사장들이 만들어낸 제도와 교리만 보인다.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사 간의 갈등, 계층 간에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보혁 간의 갈등, 이념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갈등 등을 부추기며, 항상 가진 자, 기득권자들을 대변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종교적 제도와 이념에 갇혀 북한을 무조건 적대시하며,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왔고, 보이고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 500만명을 죽이는데 절대로 혼자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유럽 기독교인들의 ‘유대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는 관념이 유대인 500만명을 학살했다. 오늘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북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공산주의는 무조건 싫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다.

과거나, 현재나 남북한의 분열과 갈등은 대부분 성직자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혼자만 하나님나라에 가겠다는 속셈이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나라는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남북한민족과 세계민족이 함께 가야 곳이다. 우리가 전도하고, 세계선교에 나서는 이유이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라고 교훈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소리치자
예수님의 평화(샬롬)를 위해서 일하는 교회가 되자

이스라엘 하나님, 세계민족의 하나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남한민족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북한민족의 하나님이다. 또한 세계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나라는 혼자 구현할 수 없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구현해야 한다. 하나님나라를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이며, 성령 안에서 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대화하고, 또 대화해야 한다. 76년간의 반목과 갈등이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 없다.

그래야만 글로벌시대, 세계를 품을 수 있다. 초대교회는 갈라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 회의하고, 정적들과 대화했다. 하나님은 화해를 위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여기에는 이방인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초대교회가 부흥하고, 칭찬받은 것은 서로 화해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았기 때문이다. 장로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대화하고, 성령 안에서 합일을 이루려고 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앙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런 초대교회의 신앙에서 이탈했다. 자기중심에 갇혀, 기득권에 갇혀, 혼자만 하나님나라에 가겠다고 아우성친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보수적인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은 남북한 간의 싸움을 부채질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으니, 남한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힘의 논리를 펼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샬롬(평화)을 외치기보다도, 힘에 의한 평화, 로마 팍스를 외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치와 복음에서 이탈한 것이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 갇혀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을 향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다. 오히려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 아베를 향해 ‘사죄 한다’며, 반민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일본 아베는 우리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 징용자들에게 사과한번 하지 않았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원시국가의 틀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이웃나라이다. 그런데 일본 아베는 미국 대통령에게 빌어 붙어 미국과 한국 간에 이간질을 시킨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매우 곤궁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이들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오늘도 일본은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기 바라는 나라이다.

이웃나라로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야 할 이웃나라이라는데 안타깝다. 국민 대다수가 정부만을 믿고 일본 아베의 경제침략에 맞서 차분히 대처해 왔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돈을 벌기 위해서 매춘부를 자원했다고 막말을 쏟아 내는가 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일본과의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한다. 일본은 대한민국과 동맹을 맺을 수 없는 침략 국가라는 사실을 망각한 처사이다.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반대하는 나라 일본 아베를 향해 사죄니, 동맹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타락한 종교인은 종교에만 충실한다. 그렇다보니 선을 가장한 무능함만 보인다. 이들은 힘없는 국민이 억울함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한다. 오늘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목회자와 교인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자

이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친일적인 정치인과 목회자, 교인, 기자, 학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이들은 나라를 지켜야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스스로 저버렸다. 이것은 남북분단이 가져다가 준 아픔이다. 그래서 남북한 민족 스스로 민족의 문제를 외세의 도움 없이 해결하라는 것이 아닌가.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남북한의 대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성령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유럽의 나라들이 유토피아를 이룬 나라로 부러워했다. 이번 신종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를 대처하는 유럽과 미국을 보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 국민이야 말로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미국 국민은 ‘코로나19’에 걸리면 수 천 만원의 치료비를 내야 한다. 치료비가 없어 죽어 나가는 20대 한국인 입양 청년과 흑인들을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외국인도 같은 대접을 받는다.

오늘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로 자리 잡은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와, 돌아와야 할 사람을 잊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는 구약성서 이사야 62장 1-7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왔다. 헌데 이스라엘 민족은 돌아와야 할 같은 민족을 잊고 있었다. 오히려 돌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기득권자로 등극한 것이다.

성령 받은 사람은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성찰한다. 이웃이 어느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함께 슬퍼하며, 위로한다. 매사 긍정적인 삶을 살며, 이웃과 평화를 이루려고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 중 대부분은 한국교회와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기도하자며, 나라와 민족,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구국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남북한 민족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될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행동하셨다. 하나님은 애굽의 파라오 밑에서 고난당하는 히브리인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들을 가나안복지로 인도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1천년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야훼 하나님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나라를 갈망했다. 한국교회 역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약속을 잊지 않게 하기위해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하나님께 간청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는 것을 귀찮게 여겼던 사람들이 깨닫게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키고, 통일 이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갈망하자

그리스도인들은 일본의 경제침략, 미국의 계속되는 군사비 요구, 중국과 러시아의 대한민국 영공침공, 정쟁만을 일삼는 정치인 등으로 인해 곤궁해진 국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이 기도는 분명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다가 올 것이다. 하나님은 의욕을 잃고, 비전 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대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민족은 미래 하나님나라에 대한 꿈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가지라고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꿈을 빌어보자. 우리민족은 일제 36년 이전부터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우리의 땅에서 논의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외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결정되고 있다.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민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험악한 세계, 적대자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의 성직자들은 이제라도 예언자 스가랴처럼 화평과 진실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미국 대통령에게서 진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 대통령에게서 우리는 세계평화도, 미국평화도, 한국평화도 기대 할 수 없다. 이런 미국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일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 대한민국의 성직자들이 한심하다 못해 참담하다.

이들은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한민족의 화해를 외치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향해 ‘빨갱이’, ‘좌파’, ‘용공’으로 매도한다. 이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리고, 피 묻은 손을 위해서 기도하는 잘못을 범했다. 분명한 것은 일부 한국교회는 과거에도, 지금도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반통일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회개하고, 예언자전통의 진실 된 화평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화평을 위해서 일하는 교회

이것이 예수님의 길이며,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과의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며, 역사의 현장인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교회는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자.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힘을 보태주자.

한국교회는 국민들과 교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찾자. 그리고 기도하자. 기도를 잊고, 나라의 비전을 저버리면, 이 민족은 설자리가 없다. 사도 바울은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겸손하라고 말했다. 우리가 겸손하지 않고, 자기를 나태나면, 그 사회는 갈등만을 키운다. 사회는 분열된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오늘 십자가 철탑을 높이는데 경쟁을 벌이는 한국교회에 많은 교훈을 주고도 남는다.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세상의 변화도, 교회의 변화도, 개혁 없이는 기대 할 수 없다. 개혁 없이는 복음이 열리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회개) 한다. 그것은 성령의 힘이다. 세례요한은 예루살렘의 기득권자를 향해서 회개하라고 했다. 예수님도 바리세파와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했다.

그러나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이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서는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들은 경제부국이 된 이 나라에서 마냥 행복하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라도 벽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자.

예수님의 삶의 현장은 한민족의 소원이며, 염원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이 아닌가. 광복 76년, 분단 76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평화를 노래하며, 성령 안에서 남북한민족이 합일을 이룰 수 있도록 행동하자. 기도하자. 소리치자.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하나님은 아우성치는 자들의 하나님이다. 6월 호국의 달,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의 평화,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소리치자.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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