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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강 목사] 십자가는 촘촘한대 왜 범죄는 늘어나는가?
오수강 목사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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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10  09: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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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수 강 목사

 선교 초기부터 칠십년대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 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약속 잘 지키며, 어려운 사람 동정하고, 천재지변의 험한 일에 자원봉사자로 열심히 나서며, 예의범절이 바르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이며, 선한 마음을 가져 어려운 일을 당한 자를 외면치 않는 자로 보았다. 그래도 이웃이 교회에 다니는 자가 산다면 조금은 안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상황과 인식이 좋지 않은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교회에 나가건 안 나가건 상관치 않거나 혹 교회에 다니는 이웃에게 더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신앙인의 특질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사는 집 대문이나 현관의 출입문에는 나는 이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라는 교패를 많이 부쳐 놓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예 교패를 부치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사도 이사지만 교패를 부쳐 놓은 집만 골라 신흥종교단체에서 나온 자들이 초인종을 눌러 일일이 대답하기도 귀찮아 교패를 떼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때 유명 중대형교회에 소속한 교인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를 자랑하기 위해 보란 듯이 교패를 눈높이에 맞춰 잘 부쳐 놓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 이런일 또한 시들어 굳이 교패를 부치지 않고 거주하는 신자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지만 장례식의 빈소나 출상 때에 보면 자신의 종교를 빈소 중앙에 또는 출상 맨 앞선 상주가 든 영정에 표시한다. 그런데 형사사건의 피의자나 자살자 등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에 반응은 사건의 피의자가 속한 종교의 표시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 반응은 표현은 하지않더라도 속으로 종교의 가르침이 어떠하기에 저런 경우를 격게되면 왜 자신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하찮게 여겼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독교를 진단하면 선교 초기 기독교의 정체성은 신 불신 간에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무척 좋았다고 한다. 기독교를 그 자체로 신령하게 보는 것 같았다. 기독교의 지도자나 신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하는 말과 행동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한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그 자체로 인해 이웃들에게 교회에 다니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고 추억한다. 반대로 현대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줄어들게 한다고 하는 소리가 높다. 기독교도들이 사회에 나가서 무슨 행동, 무슨 말, 무슨 생각을 가졌기에 기독교 신자들을 보는 눈이 이전 세대와 다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을 깊게 해야 함이 어떨까?

사회에 기독교의 십자가를 매단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 반대로 교인들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교회 속을 들여다보면 신규로 교회에 등록하는 교인들 대부분이 초 신자가 아니라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기존 신자들이라고 한다. 안 좋은 이야기는 중 대형교회일수록 새로 등록하는 신자들의 상당수가 다른 교회에 다니던 신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새로 시작하는 교회가 시작부터 잘못된 윤리와 도덕성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 건물 옥상에 설치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산상에서 달리신 죄인 대신 죽은 죽음의 형틀이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에 대해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는 기도가 심어진 십자가이며, 죄인들을 대신해 죽은 십자가이고, 또한 십자가에는 요셉과 욥의 억울함이 배여 있다. 그 십자가를 건물 옥상에 매어 달고서 어떻게 보면 내 교회 이외 다른 작은 교회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교회만 성장하면 그만이라는 모리배적인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지 염려다.

오색 찬란한 네온 빛으로 온 동네와 세계의 밤하늘을 수놓는 십자가의 불빛은 그대론데, 실제 교회가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십자가는 희생의 증표다. 현대 한국교회의 미래를 밝게 하려면 십자가의 소명을 본래대로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왜 기독교도 가운데 자살자가 늘어나고 각종 범죄에 연관된 자들이 증가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교회의 숫자가 늘어나고 신자들의 수가 증가하면 사회의 범죄는 그만큼 줄어들어야 마땅하다. 십자가는 촘촘한대도 사회에서 교회의 기능이 한계에 도달했는지 신자들의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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