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숲 속에서

너의 숲 속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 있음은
네 눈빛에 물들고
어깨에 기대
숨쉰다는 것

칡넝쿨보다 질긴 인연의 끈
자라는 곳마다 그늘 깊은 숲
너의 숲에서 나는
물푸레나무가 되고 가문비나무가 되고
그늘의 그늘이 되고
숲의 숲이 되고

너의 숲 속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 있음은
너 또한

* 조은설 시인: 본명 조임생. 『미네르바』 등단. 한국기독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시집 『사랑한다는 말은』 외 2권. 월간문학상. 대한문학상. 김영일문학상 등
내 안에 들어와 산다는 것

▲ 정 재 영 장로

시는 비유라는 전제로 읽어야 한다. 시어를 일차적 지시어로 읽어 낸다면 시가 아닌 산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숲을 노래 한 것이 아니라 숲으로 치환해 낸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시인의 언어(시어)는 그걸 목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숲’은 무엇이고, ‘너’는 무얼 지칭하는 것일까.

첫 연에서 숲은 사랑 또는 생명과 직결된 공동체다. 그런 면에서 가족공동체거나 친구들과의 공동체, 더 나아가 교회를 상상하게 해준다. 이런 면에서 너는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신앙공동체 구성원인 성도를 넘어 신앙대상자와 관계를 암시해주기도 한다.

2연에서 ‘인연’은 전생을 믿는 종교적 술어이지만 기독교의 섭리하는 말로 대체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인이 기독인이라는 면에서 후자로 이해하여야 타당하다.) 너의 숲에서’라는 말은 주님의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의 존재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공동체를 착화시킨 밑그림은 물푸레나무나 가문비나무로 그린 그림이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 안에 들어 온 숲인데, 이것을 신앙공동체 변용으로 본다면 주님 말씀(계3;20)의 신비성을 상상하게 해준다.

이 작품처럼 숲이라는 상관물로 의미를 드러내는 변용미학을 언어예술, 곧 시라 부른다, 그 방법은 감각화(형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작품 마지막 행에서 너와 나라는 상반성 존재를 숲으로 치환하는 걸 보게 되는데, 이것은 소위 융합시학에서 중요시하는 요소로, 시의 생명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너와 내가 서로 숲이 되는 것은 신의 초월성과 내재적 임재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작품은 신앙고백이자 기독교 교리를 변증해주는 의미까지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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