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고난 받은 민족이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드린 사람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 할 수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국민의 힘 전당대회서 30대의 젊은 당 대표를 선출했다. 이준석 대표는 취임 일성에서 공정한 사회를 강조했다. 이에 국민들은 낡은 시대를 갈아엎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몸부림이며, 개혁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공정은 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들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국민의 힘 이준석 당대표는 처음부터 공정한 사회를 말하며, 새로워지는 당의 혁신과 개혁을 말했다. 이준석 당 대표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는 대한민국 특정인을 위한 공정한 사회를 위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오늘 우리사회는 1%를 위한 사회”라고 말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1%에 속하는 의사와 검사, 판사, 정치인만 보인다. 한마디로 선택받은 1%만을 위한 불공정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늘 대한민국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정한 사회에 끼어들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빌라도에게서 벗어나 안식을 할 수 없는 백성 대부분은 공정한 사회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공정한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빌라도에서 벗어난 백성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공정한 사회라고 교육하고 있다. 예수님은 영악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 등 빌라도에 속한 사람들을 거부하고,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백성을 구원의 대상자로 선택하셨다. 이들에게 공정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백성은 공정한 사회에 참여 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해서 꿈을 꿨다.

예수님은 이들을 하나님나라에 초대했다. 한마디로 하나님나라 초대에 응답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 할 수 있다. 이들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 성서는 십자가를 ‘구원의 길’로 제시하고 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이 선택한 길이다. 하나님이 베풀어 준 길이다. 십자가는 공정하다. 공평하다. 고린도전서 1장18-25절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답하고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다. 해방신학이나, 흑인신학,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에서는 십자가를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흔히 의로운 삶을 살다가 죽임당한 사람을 “무거운 십자가를 혼자 짊어졌다”고 말하는 이유다. 십자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평하신 하나님’, ‘공정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한다.

예언자의 전통을 따르는 현장의 목회자들도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의 능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십자가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역사를 변화시킨다. 십자가는 사회적 낙오자들에게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십자가를 빼고 공정한 사회를 말 할 수 없다. 한마디로 공정한 사회는 하나님의 말씀,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능력이 차고 넘치는 사회이다. 공정한 사회는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합일을 이룬 세상이다.

하나님의 피조물 모두가 사람대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바로 공정한 사회이며, 공평한 사회이다. 공정한 사회는, 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좌우로는 이웃과 함께 인정공동체를 창조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소외된 사람 없이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나 혼자 살겠다고, 나 혼자 구원받겠다고 몸부림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성서는 지혜자나, 명철한 자들만을 위한 사회에 대해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고 교육하고 있지 않은가.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사랑에 의해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서 일 할 때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가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고난당하는 백성과 함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공평한 사회,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같은 사상을 이웃국가의 침략으로 고난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한민국의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라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의 주인으로서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공평한 사회,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백성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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