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덕 교수

 아이의 최초 교사는 부모입니다. 부모의 훈육 태도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훈육할 때 첫째, 아이를 존중으로 훈육해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존중을 부모와 타인을 존중할 줄 압니다. 존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교환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매우 귀중한 존재로 인정하셨습니다.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는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막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마18:14 “이와 같이 이 아이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잘못한 경우나 아이와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 경우도 아이에게 정직하게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이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이를 사랑으로 훈육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훈육은 진정한 훈육이 될 수 없고, 그 부작용이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부족합니다. 이 사실을 부모는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아이를 훈육해야 합니다. 부모는 마치 낯선 곳을 처음 여행할 때 안내하는 가이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를 잘못으로 혼내는 경우, 큰소리로 하지 말고 조용한 목소리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잘못을 차근차근 설명해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는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용서해주었는데 잘못이 반복될 때에도, 부모가 분노하거나 폭력을 행사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이가 잘못을 번복하면 그 잘못을 다시 상기시키고 그것에 대해 아이가 인정하는 적당한 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벌은 가혹한 신체적 혹은 심리적 고통이 아닌, 아이 수준에서 아이가 반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벌을 받게 될 때에는 부모가 따끔하게 벌을 주거나 단호한 결정으로 아이가 경각심을 갖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만약, 벌이 별거 아니다 거나 장난식으로 하게 되면, 교육의 효과는 떨어지고 부모를 얕잡아보는 경우가 생겨서 부모의 권위가 떨어집니다. 벌을 받고 난 후에는, 아이를 위로와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합니다. 아이의 잘못으로 부모가 마음을 아파하는 모습이나 부모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도 아이에게 벌을 주는 하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벌을 주기 전에 항상 부모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욥5: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사30:26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라는 말씀처럼 아이의 잘못이 나의 잘못이라는 마음으로, 나의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밝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면 아이와 부모 사이가 나빠지고, 아이가 부모에 대해 적개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훈육 시기는 갓난아이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엄마의 팔에 안기는 유아기 때부터 아이에게 부드러운 음성과 몸짓으로 훈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세상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고, 감수성이 조금씩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말을 못 하지만 엄마의 눈과 얼굴을 통하여 소통을 시작합니다. 아이는 스스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의 깊은 관심에서 성장합니다. 아이의 훈육을 연구하고, 신중하고 바르게 시작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줍니다. 막4:28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라는 말씀을 늘 기억하며 양육해야 합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안수집사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