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정 택 목사

 오늘날 교회가 십일조에 대한 진리를 모르고 있다고 보는 것은 십일조를 구약으로 알고 신약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고, 십일조는 구원과 관계가 없다는 상식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일조는 구약이 아니라 신약에서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 7:1-3절을 보면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며 멜기세덱을 통하여 예수께서 오실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신약임에도 십일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히브리서는 안식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십일조를 해야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복을 쌓아 놓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십일조는 다시 오시는 예수를 만나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 6장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일조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은 아브라함이 이미 예수를 만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요 8:56절을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며 아브라함이 예수를 보고 즐거워했다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57절에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며 청년인 예수가 이천 년 전의 아브라함이 자신을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므로 오십도 못된 청년이 어떻게 볼 수 있냐며 놀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일은 58절로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라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예수께서 있었다는 것이다. 즉 태초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때 예수를 만나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 7:4절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 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며 십일조를 드릴 때는 제일 좋은 것으로 드릴 것을 말씀하고 있다.

또 5절에 ‘레위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 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라며 율법은 레위 자손들에게 주라는 것으로 레위 자손들은 아브라함 때에는 아직 허리에 있고 나지도 않았을 때로 명령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6절에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 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라며 약속을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다는 것인데, 그 약속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약속을 받아 놓았다는 것으로 그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이다.

또 7–8절에 ‘폐 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 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며 구약, 즉 율법은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고,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받는 ‘저기’라는 것은 신약을 말하는 것으로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는데 9절에 ‘또한 십 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 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라며 레위도 십일조를 바쳤다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허리에 붙어 드렸다는 것은 레위는 태어나기 전부터 드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10절에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는 것으로 아브라함의 허리에 붙어서 드렸다는 것이다.

또 11절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라고 하는 것은 레위 계통이면 아론의 반차를 좇아야 하지만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가 아니고 별다른 지파라는 것으로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도 레위 지파와 관계가 없는 별다른 지파라는 것이다.

합동총회신학신대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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