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진다. 일생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이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다. 만남은 인간과의 만남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많은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물은 수소2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된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부모와 자식이 만나 가족의 연을 맺는다. 이런 만남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며,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만남의 인연을 경험한다.

깨와 소금을 섞으면 깨소금이 되듯. 깨와 설탕을 섞으면, 깨달음이 탄생한다. 뉴턴과 사과와의 만남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낳았고, 잡스와 애플의 만남이 세상을 바꿨다. 유성룡과 이순신과의 만남은 나라를 구했다.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를 만나서 ‘일체유심조’를 깨달았듯, 인생길에는 수많은 만남의 깨달음들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사랑을 배웠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이것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생각 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부활을 알았다. 십자가도 알았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창조 안에 거하며, 창조 안에 거하는 하나님을 고백한다. 또한 하나님은 창조 안에 거하며, 우리를 새로운 나라로 인도한다. 우리는 일주일동안 세상 속에서 살다가 7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부활의 천국잔치에 참여, 다시 일주일을 시작한다.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이 있기 때문에 부활을 경험하고, 새로운 세상, 창조에 참여한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이며, 메시아사상이다. 부활신앙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 할 수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적인 영의 우주적 관련들 속에서 다른 것들 안에, 다른 것들과 얽혀서 다른 것들과 함께, 다른 것들과 공생하며,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창조적 사귐이다.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의 섭리를 깨우칠 수도, 스치는 바람에도 계절의 원리를, 서로 나누는 악수에서도, 사랑을 깨닫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이다. 아름다운 창조적 만남이다.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을 망각했기 때문에 서로 간에 갈등하고, 반목한다. 분열한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창조 안에서 합일을 이루라고 교육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피조물들과 만나고, 하나님의 창조적 역사에 참여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며, 나누고, 베풀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사악한 인간, 탐욕에 길드여진 인간은 성경에 나타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데 안타깝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분명 아름답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을 받아드리고, 구원을 받는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만남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만남은 아름답고 항상 샬롬의 축복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만남과 평화(샬롬)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헌데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원리주의에 갇혀 아름다운 만남과 평화를 엉뚱하게 이용한다.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로인해 서로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적인 우주적 관련들 속에서 다른 것들 안에, 다른 것들과 얽혀서 살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분명 아름다운 시회는 아름다운 만남에서 만들어진다. 나의 마음서 너의 마음, 그의 마음으로 성령이 흘러 생명이 넘치는 사회, 사랑이 넘치는 사회, 인정공동체가 만들어 진다. 그리스도인들은 분열과 갈등이 없는 아름다운 사회, 건강한 나라를 위해 봉사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지는 것이다. 만남을 나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지 말자. 이것이 성서의 진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이고,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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