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황금 송아지 사건 이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 돌판을 준비케 하고 말씀하신다. 야웨는 언약을 다시 맺는 의례를 통하여 자신의 이름과 성품을 알린다. 6-7절에 이어지는 서술은 10 가지 이상이 중복된다. 처음 반복되는 ‘야웨 야웨’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70인역>은 두 번 겹친 ‘야웨’를 한 차례만 언급한다. 대부분 연구자들이 처음 ‘야웨’가 동사 ‘선포하다’의 주어로 본다.<Carasik, 302> 그러나 유대교는 두 번의 야웨는 그분이 직접 말씀하신 근거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13 가지 품성”이라 칭한다. 특히 대속죄일 회당 예배와 주요 축제 때 모든 회중이 함께 낭송하는 중요한 본문으로 취급되고 있다.

① 야웨(הוהי), ② 야웨(הוהי): 두 차례 언급된 것은 죄를 짓기 전과 후에도 야웨는 여전히 동일하신 분을 뜻한다.<Plaut, 663> 유대교에서 야웨는 자애로운(mercy) 하나님의 특성을 보여준다. ③ 하나님(אל): 엘, 또는 엘로힘은 피조물의 필요에 따라 힘을 주시는 분이며 정의로운 하나님이다.

④ 자비롭고: ‘자비, 연민, 긍휼’로 번역되는 ‘라훔’은 자궁이란 뜻이고 동사로는 ‘부드럽다, 상냥하다’이다. 사르나는 ‘도량이 넓다’고 읽는다.<Sarna, 216.> 자궁의 신축성을 떠올리며 ‘관대한,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은’ 등으로 풀이한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용서하며 베푸는 은혜가 곧 신적 속성이며 라훔의 최적화라고 본다. ⑤ 은혜롭고: 누군가 고통 중에 힘들어할 때 보이는 관심과 위로와 호의를 뜻한다. 그 범위는 ‘그의 눈에 은혜를 베풀 자에게’ 한정된다(출 33:19). 구름을 연상하라. ⑥ 노하기를 더디 하며: 문자적으로 화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나 회개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⑦ 헤세드(דסח), ⑧ 에메트(תמא): 헤세드가 법적인 관계로 형성된 수혜와 의무라면 에메트는 의지, 버티는 힘, 신실함 등을 두루 포함한다. 헤세드와 에메트가 한꺼번에 묶이면 한 낱말을 강조하는 용법이다(창 24:49; 47:29; 수 2:14; 시 25:10; 89:14; 잠 3:3). 여기서 헤세드와 에메트가 ‘풍성한’ 하나님을 의미한다. ⑨ 헤세드가 천대까지 유지되며: 첫 글자가 나머지보다 크다. 왜냐하면 잘못 읽으면 ‘보류하다, 멈추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정확히 알리려는 장치다. ‘나차르’는 신실하게 준수하다는 뜻이다. 셰마 본문에도 나타난다(히브리어 신 6:4를 보라).

⑩ 악, ⑪ 과실, ⑫ 죄를 용서하며: 인간의 사악한 본성, 반항적인 태도, 범죄적 행위 등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헤매며 잘못된 일을 저지를 수 있으나 하나님은 너그럽게 받아주신다. ⑬ 벌을 면제하지 않는다: 죄악에 대하여 3-4대까지 징벌한다는 것은 죄인이 회개하면 용서하시나 완고한 사람에게 깨닫도록 일깨운다는 뜻이다.

위 구절은 모세가 돌판을 깨뜨린 후 언약을 다시 맺는 장면에서 들어있는 고백적인 하나님 묘사다(신 10:17; 삼하 22:2-3). 마이모니데스는 여기서 하나님의 13가지 성품을 읽고 이것은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이라기보다 그분의 드러낸 통치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설명한다.<Maimonides, 124> 인간의 언어나 개념으로 하나님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고 더구나 초월적인 분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서술로만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 아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이른 바 부정신학(via negativa)이다.

포로기 이전부터 위 본문은 주요 예배의 신앙고백문으로 활용되었다(민 14:18; 시 86:15; 103:8; 145:8; 느 9:17; 렘 32:18; 욜 2:13; 나 1:3; 욘 4:2). 특히 토라 낭독을 위해 상자에서 두루마리를 꺼낼 때 큰 소리로 ‘하나님의 13가지 성품’을 노래하듯 읊는다. 한 사람이 읽을 수 없고 반드시 10명 이상 회중이 함께 낭송해야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동시에 이스라엘의 신앙 목표인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데 두기 때문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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