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그를 붙좇았더라/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기 1장 8-19절)
이 성경구절은 감동적이다. 라오미는 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불러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첫째 며느리는 어머니의 권고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둘째 며느리 룻은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며, 어머니 라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들어갔다.

룻의 이야기는 행복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하나님이며, 이방인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유대인의 하나님이라면, 이방인의 하나님이다. 룻은 이방인도 이스라엘 민족으로 받아드리라고 촉구한다. 당시 유다민족은 이방인들을 인정하지 않는 국수주의자였다. 이같은 사상은 예수님시대도, 바울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비유를 통해 이방인도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갈라디아서 3장 23-29절과 요한복음 4장 7-26절의 말씀보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원수지간이었다. 예수님으로 말마암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처한 곳에서 하나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면, 이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교육한다.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 혁명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했다.

예수님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격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율법주의 세계를 깨트리고, 복음주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율법의 세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 복음의 시대가 도래 했다. 우리는 6.25한국전쟁 71돌을 맞았다. 성서는 분명하게 교육한다. 남과 북의 민족이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육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남한민족의 하나님이고, 북한민족, 세계민족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이념관계, 대립관계, 갈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이제라도 70년의 갈등을 깨고, 복음으로 하나되어야 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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