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규 목사
사회가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참다운 정치력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한민족이 외세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에서는 더욱 능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온 민족이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같은 바람은 물론 하나의 이상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속에서 정치, 종교에 있어 모든 지도자에게 표본이 될 수 있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모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제대로 된 지도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한국교회가 갈수록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대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모세 당시 신정국 이스라엘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만 하나의 모델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세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모세는 일찍이 자신의 힘으로 히브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해결해 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동족마저 협력해주지 않았으며 결국 살인자가 되어 바로 궁실을 떠나야만 했다. 40년이 지난 어느 날 모세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하나님의 소명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고난 받는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라는 야웨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그때 모세는 “주여 죄송합니다. 보내실만한 사람이 따로 있을 줄 압니다. 그런 사람을 보내십시오” 하고 사양했다.(출 4:13)

모세는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자처했다. 모세는 바로궁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다. 같은 시대에 그의 동족은 이집트의 국고성 라암셋을 건축하고 있었다. 히브리 민족은 노역자로 끌려가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든 일을 하면서 이집트인들의 감독을 받으며 일을 했다. 그런 히브리인들의 역사는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 아래에서 식민지 생활을 했던 치욕의 36년간의 세월과도 같다. 모세는 얼마든지 낙을 누리며 바로의 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거절했다. 그리스도와 동족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히 11:25, 26)

모세는 광야에서 만나와 생수, 메추라기를 공급했다. 정치란 무엇인가? 지도력은 결국 무엇에 연결되어야 하는가? 모세가 히브리 민족을 광야로 이끌어 내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공급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민중은 항상 어느 시대나 먹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불편한 현실문제를 거론한다. 히브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홍해의 기적을 친히 체험한 자들이었지만 홍해를 통과하자마자 그들의 머리에서 기적은 사라졌다. 그리고 고기, 마늘, 생선, 수박 등이 먹고 싶다고 데모를 했다. 모세는 이러한 민중의 소리를 듣고 그 해결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입에서 냄새가 나도록 먹여주었다.

모세는 부정부패 척결을 엄격하게 시행했다. 물이 있으면 거품이 생기는 것같이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부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히브리 민족은 장정만 60만명이 출애굽했다. 그러나 그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가 죽었다. 그 까닭은 모세의 부정부패 척결에 따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이고 진노였다. 민수기 11장은 고기를 달라고 소리 지르는 백성들의 불평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었다. 그리고 메추라기가 그들에게 공급되었다. 모세가 부패하고 탐욕이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 것은 그의 성경 때문이 아니었다.

모세는 최종의 완성은 후계자에게 넘겼다. 모든 지도자의 큰 과실은 최후의 결말까지 또는 완성품까지 보려고 하는데 있다. 우리 사회에 정치 종교 지도자가 되겠다는 모든 자들이 자신의 부족을 느끼고 모세와 같은 신념을 소유했으면 하는 진정한 바람이다.
예장 합동개혁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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