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학채 목사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정신병자일 것이다. 자기를 상실한 정신병자에게는 다른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인구의 10%에 해당하는 5억명이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중증인 경우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라고 한다.

오늘 이 땅의 많은 문제들의 원인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일종의 ‘정신병’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정체성을 모르는 자는 정신병자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기에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된다.

미국에서는 ‘부자병’이라는 신종 질병이 발생하고 있다. 한 달에도 수천만 달러를 벌어드리는 신흥 부유층인 인터넷 관련 사업자나 금융, 증권 부문 종사자의 자녀들이 돈의 가치와 부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을 모르고 무분별한 낭비와 탈선으로 사회문제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각종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종의 ‘부자병’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를 비롯하여 많은 은행들이 다수의 정신과 의사를 정식으로 고용하여 주요 고객인 부자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상담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신흥 재력가들이 생활방식의 변화보다 재산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그 자녀들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도 일종의 자기 정체성의 상실에서 오는 사회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회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원조교제, 주부 탈선, 학원 폭력, 정치인들의 부정 부패, 각종 범죄와 파렴치범들….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은 자기 정체성 상실에서 연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자기상실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병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만의 사회 심리적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체면, 눈치, 핑계, 정 등을 들 수 있다. 자기의 진면목을 상실한 채 사실과는 다르게 상황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체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눈치,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무책임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핑계,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지 못하게 하는 인정주의 등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로 인한 정신병자적인 사회 심리적 특징들이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교회는 어떤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 확립은 어느 정도일까? 각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요즘 크리스쳔들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인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들은 교회가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져 가고 있으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적신호로 볼 수 있다. 종교나 교인이 그 정체성을 잃은 상태를 ‘타락’이라고 부른다면 한국교회는 그 정체성을 상실한 채 점점 타락해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이런 통계 수치를 떠나서 한국 교회의 만연된 문제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한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교회의 정체성,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다. 세계적인 신학자 네덜란드 베크 박사는 “초대교회는 어떤 사역보다도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을 최우선시 하였다”면서 “한국교회가 지속적으로 부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사명을 앞세우기 전에 교회의 정체성을 더욱 굳건히 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복음과 교회의 본질 회복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지금의 정체성 위기는 ‘본질로 돌아가라’, ‘본질에 충실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발견할 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성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아들답게 ‘세상의 빛’으로 살게 되면 한국교회는 사랑과 자유와 평화와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것이다.
 

예장 개혁 증경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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