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교회 간 소모적 경쟁보다 효과적 연계방법 고민
지역아동센터나 노인복지센터 등 우후죽순 설립 제한해야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마저 잃어버리는 지경에 처했다. 분열과 갈등으로 불거진 각종 문제로 인해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심은 어느새 따가운 눈총으로 변해 버렸다. 어떤 종교보다도 사회적 관심과 칭찬을 한 몸에 받았던 한국교회가 현재는 이렇다. 그나마 벌이는 나눔사역도 일회적이거나 이벤트성 나눔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교회가 지속적이며 적극적인 나눔사역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학교와 병원 설립, 농촌계몽운동, 절제운동, 해외 원조기구의 전쟁난민 구호로 시작된 고아원 등 복지사업, 빈민공동체운동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아낌없는 나눔으로 ‘사랑의 종교’란 인정도 받았다. 그만큼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온전한 나눔사역을 전개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이웃사랑이었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교회는 이웃사랑보다는 교회성장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과거 보여줬던 아낌없는 나눔이라기보다 보여주기식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나눔을 행하는 단체나 교단 간 경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금액을 나눴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더욱이 우후죽순적 지역아동센터나 노인복지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중복되거나 체계화되지 않은 사역자체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회마다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경쟁심에 질적으로 떨어지는 사역만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역은 한국교회의 이미지 실추만 부채질할 뿐이다. 진정성이 떨어지는 사역이기에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안타까운 것은 작금의 한국교회는 보여주기식 나눔사역마저도 부족한 실정이라는 점이다. 교회예산의 10%를 사회로 환원하는 교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오히려 책정이 되어 있는 예산마저도 삭감하는 수준이다. 사회복지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후퇴만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교회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찾아하는 일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교회가 지역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 교회의 이웃사랑은 극대화 된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더불어 지역사회 안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자신들만의 사역을 위해 경쟁하기보다 어떻게 연계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이벤트성의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일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특정한 날에만 집중적으로 쏠리는 이웃사랑이 한 해 동안 꾸준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12월에는 누구보다 많은 이웃사랑을 선보이지만, 이 시기가 지나가면 이웃사랑의 열정도 같이 식어버린다. 따라서 한해의 계획을 세워 쏠림현상을 방지하고, 교회가 언제나 소외된 이웃과 함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한국교회는 지역사회뿐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과 복음과 사랑을 나누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나누고, 중국, 러시아의 조선족 및 고려인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 또한 일본에서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나서야 하고, 북한동포들을 위한 나눔실천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도록 한국교회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물량주의, 물질주의, 개교회주의, 성공제일주의에 빠진 한국교회는 개혁과 갱신으로 초기 한국교회의 본질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빵 하나라도 나눠 먹으려했던 마음가짐을 아로 새겨야 한다. 예수의 사랑실천이 교회 밖의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이웃까지 포함한 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교회예산의 3분의 1을 순수 봉사비로 지출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교회가 이 땅에 서있는 이유가 웅장함을 뽐내려는 것이 아닌 선교와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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