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성 목사
교회는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이며, 평화와 화해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 면면을 들여다보면, 미움과 갈등, 분쟁과 욕망만이 들어차 있다. 한국교회 곳곳에서는 분열과 갈등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랑과 생명, 평화와 화해의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한국교회의 연합사업, 교단, 개교회를 막론하고 분열과 갈등의 모습은 극대화되고 있다. 한기총은 수년전 대표회장을 둘러싼 금권선거 문제로 한기총과 한교연으로 분열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기총에서 일부 교단이 이탈, 제3의 단체를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한 단체가 나눠지는 것을 문제 삼을 것은 아니나, 문제는 그 원인이 서로의 이해관계와 욕심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사랑과 생명, 평화와 화해, 용서는 온데간데없이 서로에 대한 비난과 원망, 정죄와 갈등만이 존재하고 있다. 대표회장을 비롯한 요직을 차지하기 위한 교권 다툼과 명예욕이 단체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만하다.

연합사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교단에서도 분열과 갈등은 만연해 있다. 5년간의 혼돈 속에서 겨우 제자리를 잡는 듯 했던 감리교도 또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애당초 감리교의 혼란이 감독회장 당선자 문제로 촉발됐다는 것도 권력욕과 명예욕, 교권 다툼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목소리다.

분열의 교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개혁측의 행보도 여전하다. 개혁측은 끊임없는 분열과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교단 수가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을 정도로 아메바식 연합과 분열을 반복해 왔다. 지난해 총회에서 어렵게 그 중 몇 개 교단이 하나의 개혁교단의 기치를 높이 들고 통합의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들어 또 다시 통합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개혁측의 분열 역시 서로의 이해관계와 감정싸움, 자리다툼이 그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처럼 개혁측의 분열은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계파들의 충돌, 이해관계, 교권 다툼이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개교회 역시 분쟁과 갈등에 휘말린 곳이 상당수다. 특히 대형교회에서 그 분쟁과 갈등은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사랑의교회를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다. 비단 이들 교회뿐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회들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오늘날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가. 교회는 복음전파의 사명과 더불어 사랑과 생명, 평화와 화해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속한 사회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교회 본연의 책임을 망각하고 있다. 교회가 교권다툼에 몰두하고 명예와 돈을 쫓는다면 세상에서 어찌 존경을 받겠는가. 분열과 갈등의 대명사로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으로 인식된다면 복음전파의 사명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전도의 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은 이처럼 교회 스스로 본연의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꼴이 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교회 안의 문제가 자꾸만 세상 법정으로 확대되는 것은 분쟁의 당사자 양측 모두가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서로 내려놓고 양보하지 목하고, 평화와 화해, 용서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권력과 명예, 물질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국교회는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거듭나야 한다. 분열과 다툼, 권력과 돈을 지향하던 모습을 버리고, 생명과 사랑, 화해와 평화의 공동체로 굳건히 서야 한다. 이럴 때만이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대사회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장 정통보수 총회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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