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진 성 목사
한국사회 안에서 양극화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 또한 가난한 교회와 부자 교회 사이의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

양극화의 문제는 인류의 출연과 함께 생긴 인간의 사회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극화의 문제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갈등과 분열에 휩싸이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회 또한 이러한 양극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날이 갈수록 극심해져 가는 양극화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는 또 다른 양극화를 야기했다. 20%의 중대형교회와 80%를 차지하고 있는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의 양극화 문제는 사회 문제 못지않게 심각하다. 이와 더불어 목회자 세습 문제, 목회자 사택비용과 거액의 은퇴금 논란 등은 개교회의 위축과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성도들간의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 같은 교회 성도들간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한국교회 양극화 원인으로 맘몬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고,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하는 풍조가 한국교회 내에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목회자들도 교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물질을 섬기는 탐욕에 사로잡힌 목회자들은 교회세습과 성직매매를 자행하고 있다.

한국교회 내에서 교회를 세습한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교단과 교파도 가리지 않는다. 교회규모가 어느 정도에 이른 곳은 거의 대다수가 은밀하게 아들이나 딸에게 교회를 세습하고 있다. 특히 교회의 규모가 클수록 교인들의 수가 많을수록 세습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이 세상의 경제논리와 궤를 같이 하면서 신자유주의적 탐욕의 산물이 나온 것이다. 이처럼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자식에게 대물림한다면 세상은 교회나 목사를 세습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교회는 양극화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지만 누가 섣불리 나서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극화 해소의 출발점은 목회자들의 운동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 속에서의 실천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형교회의 역할이 크다. 대기업이나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대형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형교회의 선교비나 구제비, 미자립교회 지원비는 교회 규모에 비해 빈약한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교회 내에서 함몰되는 경우가 많다. 무작위로 가난한 사람, 재정이 어려운 교회에 지원되기보다는, 교회와 직, 간접적으로 관련된 곳으로 예산이 흘러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교회 내에 만연한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대형교회들이 미자립교회 개척교회에 더 많이 지원하고, 나누고 베푸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와 함께 미자립교회의 자립화 및 목회자 생활비 지원사업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현재 교단 차원에서 미자립교회 목회자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교단은 예장통합과 기장교단 등 몇몇 교단에 불과하다. 대다수 교단들이 미자립교회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각 교단이 교단 차원에서 내실 있는 미자립교회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분가선교 또한 양극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초기의 선교사들은 교회가 부흥할 경우에는 교회를 분립시킴으로 새로운 교회를 세워 교회가 건강해 지도록 했다. 따라서 대형교회가 몸을 나누고 작은 교회를 담보하고 지원하는 분가선교를 통해 한국교회를 성장시켜 나갈 때 우리 교회가 동반해서 성장할 수 있다. 심각해지는 양극화현상의 해결 없이는 한국교회에 미래가 없다. 작은 교회를 돌아보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이야말로 교회 양극화의 해결과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출발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장 정통보수 총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