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근 열 목사
이제 금년도 두 장의 달력만 남아있다.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때때로 추위를 느끼면서 참 세월이 빠른 광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금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도 빨리 가는 순간들인가를 세삼 느낀다. 요즘 한국 사회는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환풍기에 소중한 생명을 잃은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도 안전을 강조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안전을 강조 했건만 말 그대로 안전 불감증에 걸린 나라가 될까봐 걱정이 된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그때는 모든 언론이 총 동원되어서 질타하고 소란법석을 부리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몇 년 후에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과거에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풍기에 의한 사건은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행사 책임자들이 찾아오는 관중에 대해 불편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전점검을 꼼꼼히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제는 내가 맡은 일 즉, 책임을 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눈가림만 하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중 하나는 아닐까? 심히 염려되는 부분이다. 책임감이 결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인간의 죽음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계기를 통해서 교회는 어떠한가 다시한번 점검해봐야 한다. 교회는 교회의 책임이 있다. 그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책임감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본분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한국 교회 지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함께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 구원 얻도록 잘 인도 함이라 이 찬송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찬송가사이다. 한국 교회는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 때문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교회 자체적으로도 섬 지방이나 농어촌에서 목회자들이 생활이 안되어서 굶주리고 허덕이며 살고 있는 목회자들이 사실상 많이 있다. 가족들, 심지어 자식이나 자신의 병원비가 없어 병원도 못가는 물질적인 어려움이 극에 달하는 목회자들의 경우가 너무 많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넥타이매고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농어촌 목사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함께 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얼마 전 우리는 성도들과 함께 여수 애양원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에 다녀오게 되었다. 초라한 건물 이전 모습보다 훨씬 좋아졌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원자탄을 숨결로 느끼고 오면서도 하나님께 죄송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신앙의 출발을 다짐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그 건물의 모습에서 우리는 타고 갔던 버스를 주차할 곳이 없어 애를 먹었는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 기념관이 이렇게 주차 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야 되겠는가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복지관을 짓고 별관을 짓고 교육관을 짓고 수양관을 짓고 그 어마어마한 대지 위에 수많은 웅장한 건물들을 개인 교회들도 짓고 있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훌륭한 순교자의 기념관으로서는 초라한 모습이 아닐까? 한국교회의 책임은 첫 번째가 영혼을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우리들의 어머니는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이려고 열심히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셨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잘 먹이려고 부지런히 영혼을 위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해야한다. 더 먹고 싶어하는 양떼들에게 목사는 자기를 희생으로 줄 수 있을 때 목사일수가 있다. 성도는 그 목사를 존경하고 따르고 순종함으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과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줌으로 우리를 살리셨다. 목사의 심장도 예수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험한 시대에서 바른 목회자와 바른 성도의 모습이 이 민족을 위해서도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가장 첫 번째로 지녀야 할 덕목이다. 목사는 교인을 위해서 희생할 때 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본지논설위원・군남반석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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