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주 규 목사
성탄절이 다가 오면서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생각나는 것은 크리스마스 추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성탄절 카드 보내기 등 성탄절의 풍경을 알 수 없겠으나 중년층들은 그래도 어릴 적 기억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탄일종이 땡, 땡, 땡…’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노래가사다. ‘크리스마스’, 이맘 때가 오면 어른이 됐어도 그 캐롤송은 지워지기는커녕 더 선명하게 다가와 흥얼거리게 한다. 첨단시대에 듣는 디지털 음악의 섬세함을 무색케 할 정도다. 흰눈사이로 썰매를 타고로 시작되는 캐롤송도 뒤따라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빠져들게 한다.

흰 눈이 소복히 쌓인 시골새벽길을 툭툭 가르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소식을 알리려 왁자지껄했던 시절. 한 세대가 훌쩍 넘어선 후에도 그 추억들이 잊혀지지 않고 소중하게 보이는 것은 말구유에 나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구주’였다는 사실을 인식한 까닭에서다. 그 옛날, 어린시절의 성탄일은 이런 강한 메시지가 먼저였기 때문에 축하송 캐롤이 더 흥겹게 다가온 게 아니었을까.

사실 크리스마스 추억 때문에 훗날종교를 택할 때 기독교인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12월이면 당연히 크리스마스 계절로 알고 길가엔 온갖 종류의 성탄 노래와 전등으로 장식된 십자가 등 기독교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다. 뿐만 아니다. 성탄절이 다가 올수록 기독교인들은 불우한 이웃돕기에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교회도 평상시와 달리 지역 사회에 불우한 이웃을 돕는 각종 행사를 벌였다.

적어도 12월이 오면 우리 사회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마음만큼은 훈훈하고 풍족했다. 왜냐하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오신 달이 아니던가. 그러나 아쉽게도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기독교 문화가 사라졌다.

교회에 하려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도 사라졌고 캐롤송이나 그 흔했던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요즘 도심의 밤거리는 휘황찬란하다. 형형색색의 트리가 장사진을 이룬다. 상점에서 울려나오는 캐롤송은 예수탄생의 메시지를 알리려 강한 템포로, 때론 은은한 템포로 퍼진다. 성탄일의 기쁨을 밋밋하게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며 상점마다 서로 담합한 느낌마저 든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땅의 평화메시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심의 풍경인가. 그러나 한쪽에선 탄생의 의미는 상품을 홍보하는 도구일 뿐이라며 도심의 풍경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성탄의 축하가 상술에 묻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연말과 더불어 한 몫 챙겨보자는 상술의 의도성이 다분하다는 얘기다. 예수탄생의 진정한 의미가 세상의 화려한 치장에 가려 퇴색됐고, 아예 그 의미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세인들의 관심은 그렇다하더라도 오늘의 크리스챤은 어떨까. 그 의미가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무색해진 것은 아닐까.

교회주일학교에서 어린이를 교육하고 있는 한 여교사의 말에 의하면 요즘 어린이들은 예수탄생의 의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말구유의 탄생이나, 동방박사의 관심보다는 무슨 선물을 어떻게 받을 것인지, 어디에서 노는 것이 신나는 것인지, 그런 쪽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축하송 캐롤도 재밌고 신나서 부르는 노래일 뿐이지, 성탄의 메시지와 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성탄문화라고 꼬집었던 기억이 난다. 세대가 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도 세속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 보인 대목이다.

성탄절을 그저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휘청거리는 날로 인식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나 미래세대인 젊은이들이 성탄절을 그저 유흥과 해방의 날로 인식하는 풍조는 우려를 넘어 처참한 심경까지 들게 하고 있다. 성탄절이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모텔들이 방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하니 그야말로 말세지경이라고 할 것이다.

다행이도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성탄문화를 되살리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상술과 물질만능주에 함몰된 크리스마스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자는 의견들이다. 예수 중심의 성탄문화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고민하고 기획해 나가야 할 책임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있다.

예장 합동개혁 전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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